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천상병 「귀천(歸天)」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by 손병일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널리 알려진 시 「귀천」은 1970년에 발표된 천상병 시인의 작품이다. 당시 시인은 독재 정권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정상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몸과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술에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상태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시인은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아름다웠다’ 말하겠노라”고 노래한다. 「귀천」을 접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아름다웠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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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cafe.daum.net/sodorl/SXIH/1422?q=%EA%B7%80%EC%B2%9C+%EC%9D%B4%EB%AF%B8%EC%A7%80&re=1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새벽빛이 막 지나간 아침이었다. 안산시립병원 당직 의사는 그 새벽에 아버지 임종이 다가왔다고 알려주었다. 우리 가족은 의식을 잃은 아버지를 앰뷸런스로 집으로 모셔 왔다.


한 시간쯤 뒤 연락을 받은 담임 목사님과 교인 분들이 집으로 도착했다. 교인들의 찬송가 소리가 들리자 아버지의 두 팔이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졌다. 의식을 잃은 채 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찬송가가 끝나자 아버지의 팔도 다시 내려왔다. 두 번째 찬송가가 울려 퍼지자 이번엔 아버지의 손이 박자에 맞춰 성경책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찬송가 마지막 절이 끝난 순간 아버지의 손가락이 멈췄고, 아버지는 하늘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평온한 아버지의 얼굴은 세상을 떠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믿기지 않아 귀를 아버지 가슴에 가만히 대봤다. 심장은 멎어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돌아가시기 전날의 아버지 얼굴은 마치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는 내게 양복을 입고 오라고 하셨다. 후줄근한 옷만 입고 왔던 아들이 양복 입은 모습을 꼭 보고 싶으신 듯했다.


내가 양복을 입고 간 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이었다. 병실에서 마주친 간호사가 나를 한 번 더 쳐다보고 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꾸 바라보며 멋있다고 감탄을 하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천진하고 해맑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밝고 따사로운 겨울 햇살보다 더 눈부신 기쁨과 환희로 빛이 났다. 잠시 후면 꿈에 그리던 ‘님’을 만나게 되리라는 기쁨과 기대에 들뜬,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연신 거울을 바라보며 숱 없는 머리를 빗으셨다.


“여보, 나 이발 좀 시켜줘.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목욕도 해야 되는데….”


어머니는 병이 호전된 아버지 모습에 기뻐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아버지를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그날 아버지는 촛불이 꺼지기 전 마지막 불꽃을 피워올리듯 미음을 두 주만에 드실 정도로 상태가 좋으셨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아버지의 천진난만한 얼굴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완고하고 폭압적인 아버지 속에 이런 동심의 마음과 천사의 얼굴이 있을 줄 몰랐다. 아버지는 평생토록 미워해 왔던 작은 외삼촌이 보고 싶으니 빨리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외삼촌에게 성경책을 사주고 싶어 하신 아버지의 뜻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두 주 전 자신을 쫓아내듯 큰 병원으로 내보냈던 늙은 여의사가 너무 예쁘다며 아버지는 하루 종일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햇살이 부드러워진 오후에 아버지가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휠체어를 밀고 아버지를 병원 밖으로 모시고 나갔다. 몇 주 만에 나무와 흙과 돌, 새들을 보신 아버지는 세상을 처음 구경하는 아이처럼 환희를 터트리셨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아버지의 입에서 기쁨에 겨운 노래가 터져 나왔다. 온 세상이 경이로운 축복과 샘솟는 기쁨으로 넘쳐흐르시는 듯했다.


한밤중에 아버지는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셨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기 직전 내가 눈물 맺힌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저희도 곧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갈 거예요.”


나의 마지막 인사에 아버지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아들아, 죽음은 그리 두려운 게 아니란다. 나는 곧 평화롭고 자비로운 세계로 들어갈 거야. 거기서 나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거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아버지의 마지막 날은 어느 때보다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마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같았다. 나는 아버지가 하늘로 돌아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실 거라는 걸 한 치도 의심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을 남겨 주고 떠나셨다. 인생길에서 아무리 험난한 길을 만나게 될지라도 지구에서의 여행은 ‘아름다운 소풍’이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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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Movie Database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시한부 사진관 주인 남자와 주차 요원 여자의 아름답고도 애잔한 사랑을 그렸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의 일상은 차분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는 사진관을 찾아온 손님들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하고, 사진관 앞에서 티격태격하는 동네 꼬마들을 살갑게 챙기는 사람이다.


정원은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떠날 준비를 한다. 아버지를 위해 사진관의 현상기 작동법을 단계별로 적어 남겨놓는다. 그는 늙은 아버지만 남겨놓고 떠날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텔레비전 리모콘 작동 방법을 알려드리던 정원은 자꾸만 순서를 헷갈리는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원은 ‘이 세상의 소풍’을 차분히 마무리하는 성숙한 남자다.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찾아간 그는 “어렸을 적에 친구들이 다 떠난 운동장에 홀로 남아 있는 걸 좋아했다”는 독백을 들려준다. 그 운동장에서 어린 정원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하던 정원 앞에 ‘아름다운 소풍’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8월의 어느 무더운 날 주차단속 요원 다림이 정원의 사진관을 찾아와 사진을 빨리 현상해 달라고 요청한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다녀와 지치고 아팠던 정원은 남아 있던 힘을 쥐어짜 작업을 해준다. 작업이 끝난 정원이 사진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림에게 다가가 아이스바를 건네면서 두 사람의 여름 햇살 같은 사랑이 시작된다.


다림을 향한 정원의 사랑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순수하다. 현재에 온전히 충실한 사랑이다. 어쩌면 정원에게 허락된 사랑이 ‘내일은 없고 오늘만 있는’ 것이었기에 그런 사랑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정원은 무거운 서류를 구청으로 들고 가던 다림을 오토바이 뒤에 태워 자신을 꽉 붙들게 한 뒤 구청까지 태워주고, 함께 서울랜드에 가서 청룡열차를 타고 꿈같은 데이트를 하며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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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Movie Database




하지만 정원에게 허락된 ‘아름다운 소풍’은 거기까지였다. 사랑이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게 피어난 그 순간 정원의 병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행복한 얼굴로 사진관을 찾아온 다림 앞에 굳게 닫힌 사진관 문이 보인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깊어져만 가는데 사진관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림은 자신에게 한마디 인사조차 없이 떠나버린 정원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아름다운 사랑을 끝낼 수 없다. 다림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사진관 문틈으로 꽂아 넣는다. 이 편지를 보기만 하면 정원이 자신을 찾아와 줄 거라는 확신에 다림은 사진관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계절은 겨울로 바뀌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온다. 어느 추운 날 코트를 여미고 사진관을 찾아온 다림은 대답 없는 정원을 향해 돌을 던진다. 산산이 부서진 유리창처럼 사랑은 깨져 버리고 말았다.


죽음 직전 정원은 삶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사진관에서 발견한 다림의 편지를 그는 찬찬히 읽는다. 다음 날 정원은 다림이 일하고 있는 곳 근처 카페에서 다림을 기다린다. 다림을 발견한 정원은 그녀를 찾아가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유리창 너머로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연인의 모습을 가만히 볼 뿐이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왜 정원은 다림에게 작별의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났을까. 자신이 남긴 이별이 다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는 멀리서 일상을 잘살고 있는 다림을 보면서 조금은 안심하며 혼자만의 작별을 맞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미소가 사진에 담겼다. 그 미소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인생은 아름다운 소풍이 될 수 있는가. 죽음을 기억하며 살 때 삶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국민총소득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을 추구하는 부탄 사람들은 높은 행복도를 갖고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탄인들은 죽음을 가까이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들은 죽기 전까지 집에서 함께 살다가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짐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부탄 사람들에게 죽음은 무섭거나 어두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메멘토모리 문화 속에서 살아가기에 그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겐 현재를 사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것을 이뤘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들의 행복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을 ‘아름다운 소풍’처럼 사는 길은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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