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산속에서」와 영화 <행복을 찾아서>
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스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마치 어두운 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길을 찾아 헤맬 때가 있다. 인생의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스함을
앞이 캄캄한 길을 지친 몸으로 터덜거리며 걸어갈 때 멀리서 빛나고 있는 불빛을 발견하는 일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어두운 인생 속에서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 같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사람일 것이다.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가혹한 현실 속에서 맞잡을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보다 더 힘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 「산속에서」를 읽다가 내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밤에 손을 내밀어 줬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의외로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그 시기는 아버지에게 텔레비전을 던졌던 시기와 겹친다.
중학교 1학년 여름에 우리 집은 과천에서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했던 아버지의 놀음에서 벗어나고자 과천을 떠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하필이면 우리 식당이 자리 잡은 곳 근처에 놀음의 소굴이 있었다. ‘석양’이라는 지하 주점이 그곳이었다.
아버지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놀음비를 내놓으라고 밤마다 어머니를 다그쳤다. 만취한 아버지가 한밤중에 어머니를 동네방네 끌고 다니며 돈을 내놓으라고 소동을 벌인 일도 있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나를 시켜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었다. 내게 공중전화 걸 동전을 건네준 어머니가 긴급한 표정으로 미션을 일러주었다. 저녁 일곱 시가 되면 112에 전화를 걸어 “‘석양’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고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일곱 시가 다다르자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쳤다. 아무래도 내 신고를 듣고 경찰들이 출동할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장난 전화로 여길 것만 같았다. 어떤 경찰들이 열네 살짜리의 신고 전화를 받고 달려오겠는가. 아무튼 나는 일곱 시가 넘은 순간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경찰관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 우리 엄마가 신고하라고 했는데요. 지금 신사거리 석양에서 아저씨들이 싸우고 있어요. 빨리 와주시래요.”
나는 가슴을 졸이며 석양 건너편에서 신사거리 쪽을 지켜보았다. 오 분쯤 지났을까? 경찰 오토바이 두 대가 어스름이 깔린 도로를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경찰들이 석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도망갔다기보다는 계속 지켜보는 게 귀찮았던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경찰이 출동한 후에도 아버지의 놀음 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어느 밤이었다. 아버지가 식당의 물건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다. 그런 광경이 보기 싫고 무섭기도 하여 집을 벗어나 무작정 걸었다. 어느 교회 앞에 도착했을 때 내 얼굴에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십 대 후반의 여자가 교회에서 나오다 나를 보았다. 그녀가 내게 다가와 왜 우느냐고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며 아버지가 집안 살림을 다 부수며 어머니를 괴롭힌다고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느님이라는 분이 있다면 어떤 도움이라도 받고 싶었다. 신앙심이 깊어 보였던 여인은 나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아파해 주었다. 그러던 여인은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너더러 함께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막연한 기대감과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집을 향해 앞서 걸었다.
잠시 뒤 집에 도착해 보니, 아버지가 더 심하게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성난 짐승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와 식당을 에워싸고 있었다. 귀신이 들린 사람처럼 아버지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듯했다. 어두운 밤이었음에도 그런 아버지를 보던 여인의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가는 게 보였다. 저분이 우리 아버지라며 아버지를 가리킨 뒤 여인을 돌아보았다. 신심이 깊어 보였던 여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분의 신앙으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악함이 아버지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여인은 실패했던 것일까. 그녀는 적어도 고통받는 중학생을 위해 도움이 되려고 시도해주었다. 하지만 악령에 신들린 듯한 아버지를 본 순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했다. 처참한 실패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 경험은 나의 무의식에 강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좋은 의도를 갖고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그 인식은 ‘교회는 좋은 곳이겠구나’로 이어졌던 것 같다.
다음 해 나는 학교 일진이었던 3학년 선배의 권유로 집 근처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 선배는 내가 속으로 경멸하고 있던 일진 중 한 명이었다. 아무리 되돌아봐도 그를 따라 교회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쭐레쭐레 교회를 따라갔던 것이다.
내가 교회에 다니면서 두 해 뒤 여동생과 남동생이 나오게 되었고, 그 몇 년 뒤 어머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도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은 구원을 받은 것일까. 어쨌든 아버지는 그 사건과 나의 텔레비전 집어던지기 사건을 기점으로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가 줄어들었고, 얼마 뒤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말로 치열하게 다투실 때가 많았지만 그것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먼 곳의 불빛은 /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낯선 교회 앞에서 만났던 여인은 내게 ‘먼 곳의 불빛’과 같았다. 세상이 팍팍한 사막과 같을지라도 ‘걸어가 볼 만한’ 곳일지 모른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남겨주었다. 어느덧 삼십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어두운 놀이터에서 울고 있던 내게 다가와 손 내밀어 주었던 여인의 따뜻한 사랑과 깊은 영성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실화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는 ‘산속에서 밤을 맞은 듯’ 인생의 가혹한 어둠을 지나고 있는 아버지가 나온다. 크리스 가드너는 파산 직전의 흑인 가장이다. 대박을 꿈꾸며 ‘뼈 밀도 검사기’ 구입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창고에 쌓아놓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몇 달째 밀린 세금을 갚지도 못하고 빚만 쌓여가던 어느 날 결국 생활고에 지친 아내도 떠나버린다.
아들과 단둘이 남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주식 중개인’이라는 큰 꿈을 갖게 된다. 크리스는 어렵게 주식 중개인이 되기 위한 후보자 20명을 뽑는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면접 보기 전날 밀린 집세를 갚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던 크리스는 주차위반 벌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 구류를 살게 된다. 전 재산을 털어 벌금을 냈지만, 다음 날 아침 9시 30분이 돼야 풀려날 수 있다는 경찰의 말에 그는 절망한다. 면접 시간이 10시 30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을 입고 간 면접 자리에서 크리스는 기지를 발휘해 20명이 인턴사원 중 한 명으로 뽑힌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첩첩산중이다. 6개월 뒤 단 한 명이 정직원이 되는 인턴은 수습 기간 동안 월급이 없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크리스를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고 짐을 빼버린다. 크리스는 아들과 함께 모텔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면서도 주식 중개인 인턴 생활에 박차를 가한다.
전화위복의 기쁨도 잠시 찾아온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병원 담당자를 만나게 된 덕분에 비싼 검사기가 조금씩 팔려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시 재앙으로 돌아온다. 미국 정부가 크리스의 통장에서 그동안 밀려 있던 거금의 세금을 경고도 없이 빼간 것이었다.
그날 밤 크리스 부자는 모텔에서도 내쫓기게 된다. 그야말로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산 넘어 산을 안간힘으로 넘어왔는데 깊고 캄캄한 골짜기에 빠지고 말았다. 마지막 전철이 떠나버린 플랫폼에서 크리스는 아들과 단둘이 남는다. 이건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친 것이었다.
하지만 크리스에겐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도 ‘계속 걸어가게 해주는 빛’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만을 믿고 바라보는 다섯 살 아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힘으로 그는 다시 일어선다. 아들에게 커다란 검사기를 타임머신이라고 말한 뒤 버튼을 눌러보라고 말한다. 아들이 버튼을 누른 순간 공룡 시대에 도착했다고 말한 뒤 사방에 공룡이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 아버지의 리얼한 연기에 넘어간 아들도 공룡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한다. 크리스는 안전한 동굴로 숨자며 크리스를 데리고 남자 화장실 칸막이로 들어간다. 잠시 뒤 화장지를 깐 바닥에 누워 아버지 배에 머리를 대고 잠든 아들 곁에서 크리스는 뼈아픈 눈물을 흘린다.
다음날부터 크리스는 무료 숙박시설에서 잠들기 위해 5시까지 아들을 데리고 간다. 그로 인해 다른 인턴보다 근무 시간이 짧아졌지만, ‘아버지’ 크리스는 치열하게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려 계약을 꾸준히 따낸다. 그렇게 6개월을 버텨낸 끝에 마침내 단 한 명의 주식 중개인으로 합격되었다는 통보를 듣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크리스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뜨겁게 흘린다. 영화는 자막으로 그가 나중에 회사의 오너가 되었으며 수백만 달러의 자산가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공중화장실 바닥에서 휴지를 깔고 잠든 아들을 부둥켜안고 있던 새벽, 칸막이 밖에서 누군가 계속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아들이 깰까 봐 문에 노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눈물을 흘리던 크리스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게 해 준’ 빛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는 아들 크리스토퍼의 눈빛이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을 믿어주는 다섯 살짜리 아들의 눈망울이 없었다면 그는 6개월의 무급 인턴 생활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먼 곳의 불빛은 /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먼 곳에서 빛나고 있는 불빛은 그의 내면에서 빛나고 있는 불빛이기도 했다. 크리스 가드너에겐 길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자신이 주식 중개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내면의 불빛이 꺼지지 않았기에 그는 보이지 않는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 아들의 완전한 신뢰와 내면의 확신이라는 두 개의 불빛이 만나 기적처럼 주식 중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