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그런 저녁이 있다」와 영화 <퍼펙트 데이즈>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 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의 「그런 저녁이 있다」는 인생을 살아가다 의식이 명징해지는 어떤 순간을 탁월하게 표현한 시다. 이 세계의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나'가 그 하나로 합일되는 '그런 저녁'. 내겐 그런 저녁이 아버지의 죽음이 바짝 다가왔던 어느 저녁이었다. 그 저녁에 나는 삶의 깊은 곳에 깃들어 있는 어떤 신비를 분명히 느꼈다. 너무도 가까워진 아버지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어느 때보다 생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저물 무렵 /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 하늘 한구석 뒤엉킨 / 하루살이 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시인은 해가 저무는 때에 개천에 비친 하늘에서 하루살이 떼가 뒤엉켜 생의 마지막 춤을 추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주를 운행하는 신의 손길이 느껴지는 순간인 듯하다. 시인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감히 그런 걸 보고 느낀다는 사실에 놀란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 둑방의 꽃들이 /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와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 꽃들이 입을 다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저녁을 나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여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스물둘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버지는 딸의 결혼을 준비하는 날들과 결혼식 당일까지 진통 알약으로 버티셨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무서운 통증이 아버지를 덮쳐왔다.
아버지를 안산산업병원으로 모시고 가 위와 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아버지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장이 막혀서 음식을 드실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병원에서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듯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기로 한 아침이었다. 남동생이 서울대병원으로 가지 말고 할렐루야기도원으로 가자고 눈물로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도 동의를 하여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위병이었던 내가 예비군 동대로 출근하여 업무를 보고 있는 동안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그날 방위 근무를 마치고 세 시간여 동안 전철과 시외버스를 타고 포천의 기도원으로 찾아갔다. 드넓은 기도원 안에는 수백 명의 암환자와 가족들이 근심과 절망에 찌든 얼굴로 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다.
출처 : 오마이포토
아버지의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기도원 안에 가득 차 있던 신앙의 열기에 전염된 덕분인 듯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몸은 부축을 받아도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럴 기력조차 없어 플라스틱 통에 소변을 봐야 할 정도로 생명이 몸에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날 나는 어렸을 적 함께 목욕탕에 갔던 때 이후로 처음 아버지의 성기를 보았다. 벌레처럼 꿈틀대던 성기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암세포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했던 아버지의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는데, 아버지의 성기만은 본래의 형상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성기를 보고 있던 아들들에게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볼일을 보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라고 담담히 말씀하시며 소변을 보셨다. 그 소변 줄기는 장이 완전히 막힐 지경에 이른 아버지의 몸에서 유일하게 빠져나온 것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에겐 아무 희망도 없어 보였다.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려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시기에는 내가 동사무소 방위라는 사실이 일종의 구원이 돼 주었다. 나는 국방의 의무를 짊어져야 했기에 죽음의 기도원에서 잠시 머물다 돌아올 수 있었다. 전날 집회 때 전도사의 안수를 받고 병이 나은 사람을 봤다며 일말의 희망에 젖어 있던 가족들을 뒤로 한 채 긴 시간 동안 시외버스와 전철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한밤중에 빈집으로 돌아와 보니 베란다에 빨래가 수북이 널려있었다. 빨래를 거실로 가지고 와서 하나씩 개기 시작했다. 셔츠의 소매를 접고 양말의 발목을 접으면서 나는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절로 두 손에 숙연한 기운이 깃들었다. 그것은 엄숙하고 경건한 의식 같았다. 나는 느리고 섬세한 손길로 가족들의 옷을 만지고 포개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느끼고 있었다. 내 손에서 놓여난 옷들은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정도로 반듯하고 정갈하게 개켜 있었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 나무의 나이테를 /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 가만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 옹이로 박힐 때까지
죽어가는 아버지를 포천의 기도원에 남겨 놓은 채 홀로 가족의 옷을 개는 동안 내 영혼은 알 수 없는 충일함으로 가득했다. 마치 ‘나이테가 내 속에 둥글게 새겨지는’ 듯한 시간이었다. 시인이 ‘가만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 것처럼 나도 영원히 옷을 개는 시간 속에 있고 싶었다. 당시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그 어둠이 내게 놀라운 현존 경험을 선사해준 것이었다. 그 ‘카르페 디엠’이 내 영혼에 옹이로 박히길 간절히 바랐다. 그 어둡고 외롭던 겨울밤 빨래를 개면서 느꼈던 충일감을 나는 이후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했다.
출처 : 유튜브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 그런 저녁이 있다
‘그런 저녁’을 느낀 게 벌써 삼십 년도 훌쩍 더 지난 일이다. 그 후에도 옷을 개다가 문득 그날 저녁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면 그 충일함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옷 개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예전의 그 길’은 어느덧 끊어져 있었다. 다시는 그런 현존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무성한 일상의 수풀더미 앞에서 하냥 서 있게 되는 그런 저녁이 있을 뿐이었다.
출처 : 쿠팡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은 일본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다. 히라야마는 하루가 완벽한 날이 되게 하기 위해 엄격하게 루틴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 개기와 양치질을 하고 화분에 물을 준 뒤 출근한다. 집을 나서면 아침 햇살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들고 차에 오른다. 차에서는 60~70년대 올드팝을 카세트테이프로 들으며 회사로 향한다.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그의 자세는 거의 수도자에 가깝다. 안 보이는 곳까지 온 정성을 다해 닦으며 화장실이 반짝반짝할 정도로 깨끗하게 만든다. 점심시간엔 산사로 가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고 난 뒤, 필름카메라로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를 찍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엔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한 뒤 단골 선술집에서 술을 한 잔 마신다. 집에 돌아와서는 헌책방에서 사 온 명저를 읽다가 잠이 든다. 공중화장실 청소부 노인 히라야마의 하루하루는 성실함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엄격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이가 많은 그는 청소 일을 하면서 종종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에 부딪히곤 한다. ‘청소 중’이라는 팻말을 화장실 앞에 놓고 한창 청소 중인데 술 취한 남자가 무시하고 들어온다. 그걸 본 히라야마는 말없이 청소도구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와 남자가 나오길 기다린다. 감정이 욱하고 올라올 것 같은 순간에도 그는 고개를 들어 햇살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볼일을 보고 나가던 남자는 팻말을 쓰러뜨리고 가버린다. 히라야마는 이번에도 묵묵히 팻말을 바로 세운 뒤 화장실로 들어가 하던 청소를 계속한다.
한번은 길을 잃은 남자아이가 화장실 변기 위에서 울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달래준 뒤 손을 잡고 나온 히라야마 앞에 아이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히라야마가 잡아줬던 아이의 손을 더럽다는 듯 닦으며 가버린다. 엄마 손에 이끌러 가던 아이가 히라야마를 향해 손을 흔들 때 그는 밝은 미소로 화답해준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서 히라야마가 굳게 지키려고 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지금은 청소부 일을 하고 있으나 그는 과거에 지식인이나 인텔리의 삶을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히라야마는 얼마 뒤 가출한 조카 니코를 거둬 함께 기거하기도 한다. 나중에 니코의 엄마, 곧 그의 여동생이 운전기사를 대동한 고급 차를 타고 찾아온다.
출처 : 연합뉴스
어느 날 히라야마를 따라 공중화장실에 간 니코는 한 여고생의 행동을 보고 분노를 느낀다. 여고생은 청소 중인 히라야마를 향해 개를 부르듯 “쯧쯧”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히라야마는 늘 그랬듯 청소도구를 들고나온다. 화가 나 여고생 쪽을 노려보고 있는 니코를 본 히라야마는 잔잔한 미소를 보내준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외삼촌의 웃음을 본 니코도 곧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짓게 된다.
히라야마는 주말마다 자신이 찍은 코모레비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고 일주일 전 맡긴 사진을 찾아온다. 집에 와서 경건한 자세로 사진을 선별하여 버릴 건 버리고 간직할 건 월별로 분류된 통에 모아둔다. 그에게 코모레비는 삶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상징이자 은유인 듯하다.
그런 저녁이 있다
히라야마는 삶에 충만한 기쁨과 감사를 선사하는 ‘그런 저녁’을 코모레비를 통해 자신에게 초대하는 듯하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장자의 ‘빈 배’가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는데 다른 배가 어지럽게 흔들리다가 자신의 배에 부딪혔다. 화가 난 배의 주인이 상대에게 따지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배가 비어 있었다. 그는 주인이 없는 배에 화를 낼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히라야마의 삶은 ‘빈 배’를 닮았다. 히라야마처럼 마음을 ‘빈 배’로 만든다면 타인과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빈 배는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옳음을 다 내려놓은 텅 빈 마음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누군가 내게 화를 내더라도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온함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