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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Apr 03. 2024

집안일하는 바니

[바니바니, 당근당근, 거래 성공!]


본가로 들어오게 되면서 본가와 겹치는 청소용품, 너무 많아서 나 혼자서는 언제 쓸지 모르는 학용품, 잘 썼지만 새로운 물건을 들이면서 더는 안 쓰게 된 탁상 조명 등을 당근에 내놓았다. 가격이 나쁘지 않았는지 끌어올리기 한 두어 번 했더니 의외로 타율이 좋았다. 가장 최근에는 가장 부피가 컸던 청소 용품을 팔게 되어 내 방의 당근존(zone)이 크게 줄었다. 

요즘은 대부분 문고리 거래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확실히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이 적어서 그런지 온다는 시간에 맞춰서 메모지를 붙여 마음 편히 내놓는다. 그럼 다들 편하게 찾아가신다. 

주로 생활 용품을 거래하는 편이라 큰 비용이 오가는 건 아니지만 소액이라도 통장에 찍히고 나면 좀스러운 고백이지만 그렇게 감지덕지일 수가 없다. 그러나 꼭 돈만이 기쁨은 아니다. 쓸 수 있는 물건이 쓰임 받을 곳으로 간다는 사실 또한 너무 기쁘다. 한 번은 무료 나눔도 해봤는데, 무료인 만큼 순식간에 너무 많은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안 쓰는 물건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역할이 있는 걸 마주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당근에서 거래를 하고 나면 이 지구별에 시간을 벌어준 것 같고, 멀쩡한 채 쓰레기통에 들어갈까 덜덜 떨고 있을지도 모를 물건에게 새로운 자리를 찾아준 것 같아 안도감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방금도 '끌어올리기'를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옆에 자취방을 꾸몄던 전등이 당근으로서 팔릴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 잊어버려서 시장에 데뷔가 늦는다. 말 나온 김에 오늘은 내놓아야겠다. 


당근 거래에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팁을 적어본다.

1. 내놓을 때는 무조건 물건을 깨끗이 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물건이든, 때 빼고 광 내고 나면 눈길 한 번 더 가기 마련이다. 옷이면 구김 없이 하고 돌돌이로 먼지를 떼주는 것만으로도 구미를 당기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2. 상태를 최대한 다각도로 알 수 있도록 올려준다.

전자제품이면 온/오프 상태를 찍어서 올린다거나, 흠집이 있다면 흠집을 알려주고, 새 상품 링크가 있다면 상세페이지를 볼 수 있도록 링크를 걸어두어 사용 기간과 상태, 가격을 한 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 

3. 비슷한 카테고리를 묶어서 세트 판매를 한다. 

한 개씩 다 팔리면 참 좋겠지만 파는 것도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는 등 공력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비슷한 카테고리로 묶어서 팔 수 있다면 세트 구성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한 번에 쌓여있는 물건을 처리할 수 있어서 개운하고, 개별로 가격 설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훨씬 덜 번거로울 수 있다. 

나의 경우, 쓰레기통과 부직포, 부직포 밀대를 묶어서 한 번에 해결했고, 연필, 샤프, 샤프심 등 문구류를 묶어서 한 사람에게 다 팔아버렸다. 


다만, 당근에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구매자 모드가 켜지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판매자로 들어갔다가 구매자가 되어 어느샌가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계속 쓸어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다 시간을 왕창 까먹는 수가 있다. 엊그제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검정 코트를 검색했다가 판매자에게 연락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판매 바니로서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을 것. 하얀 손 라이프에서의 중요한 포인트다. 



[집안일은 양심의 털을 깎는 제모기]


집안일은 진즉 내 차지가 되었다. 100%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족 모두가 가장 기피하는 집안일은 내 차지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체력이 있으니 다닐 때보다 수월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정말 '물리적인 힘'이 드는 일이라서 하고 나면 뻗어버릴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집은 가족들이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편이라 청소하기 전 준비 작업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청소기를 돌리기도 전에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벌써 30%는 에너지를 쓴 채로 청소기를 돌리게 된다. 

집안일 자체는 해본 지는 꽤 되어서 시간은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쓴다. 순서는 대략 이러하다. 빨래를 돌리고, 물을 서너 번 전기 포트에 끓여서 뜨거운 물, 주방세제와 베이킹 소다를 섞어 화장실에 뿌려두고, 청소기 돌리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정리한다. (한참 동안.) 그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 다음, 그동안 때가 불은 화장실을 청소한다. 때가 불었지만 물리력이 필요는 해서 조금 힘을 주고 박박 닦는다. 마지막으로 구연산을 따듯한 물에 풀고, 찬물을 넣은 다음 락스를 살짝 풀어서 바닥에 뿌린다. 그렇게 하면 물때와 균을 방지할 수 있다. 락스는 뜨거운 물과 만나면 유독 가스가 올라오기 때문에 무조건 구연산을 따듯한 물에 녹이고 찬물을 섞어 온도를 미적지근하게 만들고 나서 락스를 섞는다. 그러고 나면 빨래가 다 되어 있다. 빨래를 널고 나면 설거지가 있거나 쓰레기통을 비운다. 쓰레기통을 비울 때는 달랑 커다란 일반 쓰레기통만 비우는 것이 아니라 집에 있는 쓰레기통을 돌면서 비우고, 분리수거와 일반 쓰레기를 함께 비우고, 그 외에 버릴 옷가지나 다른 게 있는지 확인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대략 2시간 정도가 흘러있고, 에너지는 방전이 되어 누워서 1시간은 쉬어야 한다. 


이 외에도 수시로 나오는 설거지도 하고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마냥 좋지는 않다. 집안일 자체가 싫은 게 아니고, 청소기를 선뜻 돌리기 힘들거나 설거지가 가끔 되어있지 않을 때 '안 했어?'라고 가끔씩 쳐다볼 때가 싫다.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진짜로 체력이 달려서 힘들긴 해도 편안하고 안온한 공간에 감사하면서 청소를 한다. 솔직히, 청소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제도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면서 양심에 난 털도 애써 같이 밀어봤다.


아마 당분간 바니로 집에 있는 물건을 비우고, 청소를 하면서 양심이 조금이나마 매끈해질 수 있도록 애쓸 듯싶다. 분명 내가 집요정이 되지 않고 나와 또 잘 맞는 사회를 찾아 안착하기까지 인간다움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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