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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Mar 26. 2024

속 긁는 일이 줄어드니까 카드 긁을 일도 줄어드네?

짠테크와 잘 사는 삶

덜 사고, 제대로 사면서 더 잘 살게 된 건에 대하여


누구든지 퇴사하고 싶었던 회사를 다녔던 시절, 앞 팀 과장님이 먼저 퇴사하고 나중에 연락 와서 하신 말씀이 있었다.


"또봄아, 퇴사하고 나니까 맥주 안 마시고 싶다? 요즘에 맥주 하나도 안 마셔."


아... 과장님. 아기 엄마셨던 과장님은 퇴사하고 술 생각이 안 난다면서 좋아하셨다. 맥주가 과장님의 홧김 비용(시X 비용)이었다면, 나도 있었다. 쫄보라서 고민 없이 여기저기 소비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종종 매운 음식을 배달해서 먹거나 괜히 쇼핑 사이트를 들락날락한다든지, 읽지도 않을 책도 덥석 산 적도 있다.

하지만 퇴사하고 나갈 일이 없었고, 사고 싶은 뭔가도 크게 없었다. 어느 순간, 소비를 잘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를 사더라도, 고르는데 시간을 너무 쓰지는 않되, 적은 가격으로도 만족도를 최상으로 올리는 쪽으로 사게 됐다. 그렇게 해서 달라진 소비 패턴을 몇 가지 적어본다.



1. 사기 전, 재고 파악을 확실히 하고, 재고를 먼저 소진한 다음 새로운 물건을 들인다.


예를 들어서 화장품 할인 행사를 발견해도 쟁여둘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 사려는 화장품이 집에 얼마큼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해서 얼마 전, '헬스장에서 쓸 수분 크림 살까?' 하다가 바로, '아, 저번 할인 때 앰풀 사놓고 아직 안 뜯은 거 있었지.' 하고 바로 구매창에서 나왔다. 보디로션도 다 떨어져 가는 거 같아 쿠팡을 뒤지다가, 미국에서 사 온 호호바 오일과 친구에게 선물 받은 보디로션을 섞어서 다 쓰고 난 뒤에 사기로 마음을 바꿨다. 보디로션 보습감이 조금 아쉬웠는데 기능도 높이고, 물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사게 되어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프레시 보디로션에 미국 LA에서 샀던 호호바 오일 또로록 다 넣어버렸다. 다행히 호호바 오일의 향이 원래 자몽 향이랑 잘 어우러졌다.)


겨울에 옷은 몇 벌 샀는데, 사기 전에 옷장을 탈탈 털었다. 늘어나고, 낡아서 못 입게 된 옷들을 먼저 처분하고, 빈자리를 채울 옷을 몇 벌 샀다. 다행히 때마침 할인 행사를 발견해서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재질의 니트와 유행 타지 않는 깔끔한 셔츠를 구비했다.

(제너럴 아이디어 셔츠. 언제입어도 가장 무난한 색으로 세일할 때 샀다. 도합 4만 원 조금 안 된다)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재고를 무조건 확인하게 되니 우선순위도 명확해졌다. 사고 싶은 캔버스가 있긴 했지만 당장 급한 건 아니고, 후기를 보니 역시 신발 끈 매다가 한세월 다 갈 것 같은 디자인이라 고민을 꽤 했지만 포기했다. 대신에 겨우내 교복 단화처럼 신고 다닐 블랙 숏 부츠는 10만 원 주고 과감하게 질렀고, 아무 옷에나 편하게 신고 다녔다.  



2. 배우고 싶은 걸 배우러 가고, 궁금증을 해소한다.


비용은 단연 가장 비쌌지만, 역시 직접 배우러 가는 것보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좋은 방법은 없었다. 상상만 했던 일을 직접 해보면서 넓게 펼쳐져 있던 가능성을 줄이고, 가장 해봄직하면서도 잘 맞는 일로 줄여나갔다. 그 덕에 머리가 어지럽지 않고 평온해져 가는 중이다.


3. 원하는 건 무조건 참기보다 대체제가 있는지 적극적으로 찾아 삶의 질을 유지하는 법을 알게 됐다. 완전히 최상의 퀄리티는 아니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도!


1) 약간의 변화를 겪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서비스나 물건을 제공하는 곳이 있다면 환승하기.

오픽 시험 볼 때 취미 묻는 질문에 으레 'listening to music(음악 듣기)'을 많이 답하기 마련인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이다. 아침에 눈 뜨면 음악부터 켠다. 그래서 유튜브 가격 인상이 발표되고, 음악 앱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이전 같으면 찾아보기 귀찮아서 유지했을 텐데, 이번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음악 앱을 검색했다. 음질, 음원 보유량, 월 별 가격을 올려둔 포스팅을 보고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 중 고민하다가 애플 뮤직을 골랐다. 그렇게 유튜브 프리미어에서 애플 뮤직으로 갈아탔다. 

애플뮤직은 첫 달은 무료, 그다음부터 8,900원이 결제된다. 다달이 나가는 비용이 14,000원에서 8,900원으로 줄인 것은 물론이고, 유튜브 영상을 다운로드하여 저장해놓고 보지 않으니 핸드폰도 조금은 덜 보게 된 것은 뜻밖의 수확이다. 오랜만에 보는 유튜브 광고가 싫을까 봐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쿨하게 '건너뛰기'를 누르거나 광고가 나왔을 때 '억, 폰 너무 오래 봤다!' 싶어서 후다닥 앱에서 벗어나게 되니 오히려 더 좋다.






(트와이스 이번 신곡, ONE SPARK가 국내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거 같은데 나는 너무 좋다. 많관부!)


2)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친구와 바꿔 읽거나, 중고 서점과 당근 마켓을 찾아보기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빌리는데 신경을 계속 써야 하면 알라딘 중고에서 검색해서 사거나, 친구와 바꿔서 읽었다. 

마침 휴지기가 겹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와 2주에 한 번 정도 만나 책을 바꿔 읽었다. 재밌게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나 웹툰을 빌려주고, 최신 에세이류를 받아봤다. 책을 교환하려고 만나면 각자가 빌려 읽은 책에 반응이 좋아서 서로 뿌듯해했다. 

중고 책은 배송비 포함해서 새 책보다 저렴하면 샀는데, 이제는 당근 마켓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따끈따끈한 신간을 바로 읽고 싶으면 그때는 가감 없이 새 책을 사지만 베스트셀러들은 확실히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금방 중고로 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반납 기한의 압박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새 책은 16,000원 선 이상이다)

마일리지가 쌓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당장에 통장에서 나가는 비용의 메리트에 비할 바는 아니다.


3) 주변 사람들이 내놓음직한 물건을 미리 찜꽁해놓기.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기계식 키보드를 친구에게서 사 왔다. 최근 지출 중에서는 조금 컸지만, 원하는 아이를 데려와서 만족도 최상이다. 이 글도 그 키보드로 치고 있다. 자꾸 입꼬리가 올라간다.


(레오폴드 FC750R)

친구는 최근 일이 생겨서 물건을 여러 개 처분하고 있는 중인데, 그중 저 키보드도 있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나 살래. 대신 만 원만 더 깎아줄 수 있어?"

친구는 살 사람 따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사 가서 좋고, 나도 원하는 가격에 믿을 만한 판매자에게 사서 좋고, 윈윈 거래를 했다. 주위 사람들 중에 이사를 갈 것 같다거나 결혼 등의 이유로 물건을 처분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처분할 때를 살짝 노려서 거래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타닥타닥 타이핑 칠 때마다 지성의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푼수 같아 보일지 모르겠다만 느낌은 그렇다. 무엇이든 팍팍 쓰고 싶어지는 기분은 덤이다.)



4. 커피 쿠폰으로 카페 가는 비용을 낮춘다.

이 글을 쓰려고 다른 분들은 짠테크를 어떻게 하시나 검색해 보니 커피는 쿠폰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네이버나 당근에 가고 싶은 프랜차이즈 브랜드 커피 쿠폰, 예를 들어 '스타벅스 쿠폰'이라고 검색하면 원래 쿠폰보다 조금 더 낮은 가격의 쿠폰을 발견할 수 있다. 




나도 아래 사이트에서 쿠폰을 사서 스타벅스 갈 때 활용한다. 에코별 무료 음료  쿠폰 옵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텀블러를 들고 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래도 1,000원 할인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훨씬 크다. 


https://smartstore.naver.com/kimcrab/products/9833121015?NaPm=ct%3Dlu779xq2%7Cci%3Dcheckout%7Ctr%3Dppc%7Ctrx%3Dnull%7Chk%3D702d1fce60a8fced3b65b64a0c954701a5c67cc2








후기에 보니 말차 라테도 200원 정도만 추가해서 드셨다는데, 비싼 음료도 더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올려둔 사이트는 한 번에 5장까지 구매할 수 있다. 5장으로 아메리카노만 마셔도 5,000원은 절감되니까 벌써 라테 한 잔 값이 빠진다. 스타벅스나 그 외 4000원 이상의 커피 브랜드를 갈 때 이용하면 은근히 아낄 수 있다.



열받고 살지 않아서 열 식히느라 사지 않는다. 속 긁을 일이 없어서 카드 긁을 일도 줄어들고 있다. 다시 일을 하게 되면 또 1818거리면서 마구 긁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토스 앱에서 발견한 체크카드. 통과시켜준 분께 박수를.)


꼭 갖고 싶었던 것을 좀 더 저렴하게 사서 현재 삶의 기쁨과 미래 대비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다. 


하얀 손 생활, 이만하면 아주 선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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