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DOBOM Apr 06. 2024

가시의 각도를 섬세하게 움직이는 고슴도치가 되어가는 중

“또봄이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연습을 해보자.”

초등학교 졸업식 날 담임 선생님은 손 편지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가길 독려하셨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단 한 명 외에는 친구가 없었던 날 보시면서 걱정스러우셨나 보다.


꼭 필요한 조언을 받았지만 사교성은 영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으스대는 타입도, 똑똑하든지 운동을 잘해서 선망의 대상이 되거나 인기가 있는 타입도 아니었고, 덕질을 하는 카테고리도 겹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중학생 때 친구들을 따라 만화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친구들은 스포츠, 판타지를 좋아했고 혼자 순정만화 파였다. 다들 남자 아이돌에 미쳐 열광할 때 여자 솔로 가수 노래를 주야장천으로 들었다. 마이너 한 취향에 유행하는 물건도 없고, 얼굴도, 성적도, 운동도 뭐 하나 특출나보이지 않은 애가 그다지 고분고분(?) 하지도 않는 모습에 몇몇 급우들은 재수 없다고 생각됐는지 주로 혼자 있게 됐다. 나 역시 어렸어도 관계란 한쪽만 노력한다고 해서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혼자 있는 게 낫다고 여겼다. 섣부르게 다가가 ‘을’로라도 무리에 있는 것보다 가끔 무시당하고 외로워도 동등하지 못한 관계에 절절매는 것보다는 나았다. 타의에 의했지만 자의적으로 선택했던 터널을 지나 무사히 온 대학에선 나쁘지 않게 적응했다. 대학은 1년 내내 똑같은 급우들과 살아야 하는 초, 중, 고와는 달리 적당히 겹치는 스케줄을 두고,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만 보아도 이상할 게 없어서 편안했다. 


그래도 거의 12년이라는 시간동안 도로가 한 두 개밖에 없는 외딴섬처럼 지낸 여파는 꽤 강력해서 대학 졸업 무렵에도 친화력을 많이 기르지 못한 채 사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인사부터 쉽지 않았다. 인사만 잘해도 반만 먹고 들어간다는 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보아서 알았지만 부끄러운 건지, 껄끄러운 건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인사하면 얼른 묻어갈 생각에 인사 여운이 가실세라 뒤따라서 인사했지만,  ‘웃으면서 인사하기’를 먼저 하는 건 상대가 싫은 게 아니라 어색해서 싫었다. 요청은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어렵고 어색했다. 꼬여버린 관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회의감만 깊어갔고, 나에게도 남에게도 점점 시니컬해졌다. 


퇴사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언젠가는 사회생활을 재개할 텐데 또 같은 문제에 부딪치면… 굳은살 배길 틈도 없이 살갗이 너덜너덜 벗겨질 것 같았다. 사회생활에서 뚝딱대는 이유가 내 안의 금쪽이 때문인지는 알았다.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외로움에 거절을 하는 것에도 받는 것에도 약해지고, 눈치 보면서 알아봐 달라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상황을 타파해 줄 방법은 알 수 없었다. 인생에 또 언제 올지 모를 이 남는 시간을 잘 이용해 날 미치게 하는 이 쳇바퀴에서 내려올 방법을 탐색했다.


정신과 선생님이 쓴 책이나 심리학 서적 몇 권을 뒤적거리다가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박재연, 한빛라이프, 2020.07.01)라는 책을 보게 됐다. ‘상처받은 어린아이도 있지만, 상처를 다독여줄 성숙한 어른도 내 안에 있다’는 구절을 읽으며 이미 수 차례 안아줬던 내 안의 어린 내가 아니라, 처음으로 그 아이를 안아주는 지금의 나를 봤다. 책에 나온 미션을 하나씩 다 메모해 나가면서, 일기를 쓰면서, 실천해 볼 수 있는 건 조금씩 해보면서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나를 달래줄 수 있는 성숙한 내가 이미 있었다. 17살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내가 달라지고 싶다고 느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책을 찾고 시도해보고 있었다. 무기력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능동적인 어른이 되어 있었다. 매번 같은 실수에 자책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책에 적힌 문구를 읽으며 달라지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고, 긍정해 주며 훌쩍거렸다. 


그 뒤로 책에 나온 설루션을 하나씩 해봤다. 경비 아저씨에게 일부러 힘주어 인사했다. 카페에 가서 주문할 때도 큰소리로 얘기했다. 직원분이 “네?”하고 다시 되묻지 않도록, “아이스 라테, 톨 사이즈요. 먹고 가요.”라고 크게 말했다. 헬스장에서 PT를 받을 때도 선생님이 기구를 사용하게 할 때 왜 세 번째 구멍에 막대기를 꽂는지 모르겠으면 전과는 다르게 넘기지 않고 물었다. “막대기는 왜 세 번째에 꽂아요?”


당연하게도, 내가 용쓰는 것과 상관없이 세상은 고요했다. 아무도 비난도, 칭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만 아는 ‘참 잘했어요’ 도장은 조금 더 크게 목소리를 내서 이야기할 때마다 쌓여갔다. 


요즘도 도장을 의식적으로 찍으려고 용쓴다. 하면 할수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함을 느끼며 오래된 상처에 나에게 다가오려던 사람을 무턱대고 경계했던 건 아닌지, 양심이 좀 따끔하다. 다가가는 것도, 다가오는 것도 내 안에 공간을 내주는 것에 너무 인색하게 굴었던 건 아닌지 점검해 본다. 미숙하던 시절에 아무렇게나 대하던 아이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이해심 많고, 친절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로 충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하며 안 맞는 사람은 흘러가고,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조금만 손해 봐도 호구 취급받는 세상에서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슴도치 같은 면이 순식간에 좋아지진 않겠지만 가시의 각도는 내내 90도가 아니라 0도부터 90도까지 움직이려 노력하다 보면 초등학교 졸업식에 받은 선생님의 편지처럼 먼저 다가가기는 어려워도 다가올 누군가에게는 슬쩍 궁둥이를 옮기며 곁을 내주는 정도까지는 금방 도달할 듯싶다. 먼저 가서 호기심 있게 코를 킁킁 거리는 고슴도치가 되는 그날까지 화이팅이다. 

이전 03화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