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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Mar 29. 2024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지만

하던 짓만 하면 서서히 죽는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을 한다던가, 금연을 한다던가, 또 뭐가 있을까? 살면서 한 번쯤은, 달라진다고 말했을 때 ‘안 하던 짓 갑자기 하면 죽어.’ 같은 농담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너무 급작스럽게 변화를 주어 낯설다,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계속해서 해나갈 수 없어 보이니 일만 벌이고 마무리는 지을 수 있겠냐는 뜻이 들어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바다에 뛰어들기 전에도 준비 운동을 하고 들어가야지, 갑자기 뛰어들면 사고 나기 쉽다.


하지만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오히려 더 살아나는 거 같다. (이왕이면 자의로. 타의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으니 예외로 두겠다.) 반대로 하던 짓만 하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사라진다. 예를 들어, 운동이라고 해도, 매일 같은 운동을 하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라고 해도 지루하고 정체되어 안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퇴사하고 호기심 따라 이것저것 배우고, 들어보고, 시도해 보면서 회사 다닐 때 너무 집과 회사만 오갔기 때문에 더 쉽게 회의감을 느꼈을 거라고 결론짓게 됐다. 당시에는 일에 치여서 운동만 해도 대단한 상황이긴 했지만, 일에 자신감도, 확신도 점점 없어졌을 때,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괜스레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자료만 뒤적대다가 스트레스만 왕창 쌓였었다. 만약 친구 말대로 삶에 다른 낙이라도 있었으면 회사원이 아닌 자아가 회사원으로서의 자아를 구제해 줬겠지만 그렇지를 못해 서서히, 고통스럽게 시들어갔을 뿐이었다. 이후로는 원래도 높지 않던 텐션이 늘어난 팬티 고무줄이 되어 영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도, 흥미도, 책임감도, 동기도 다 잃은 허깨비가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처음 취업을 준비하던 때가 사회에 치이기 전이라 판단력이 더 또렷했던 건 아니었나 싶다. 취준 시절에 목표했던 토익 점수를 얻고 나니,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됐고, 학기는 당연히 다 끝난 시점이라 정말로 집 밖에 나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 참에 정말로 안 해본 걸 해보자고 결심했다. 나를 아는 누구도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걸 해본다는 생각으로 ‘댄스 학원’에 갔다. 


발품을 팔아 상대적으로 조금 더 저렴한 학원을 등록했다. 첫 수업 날은 진짜 이걸 왜 등록했지, 하면서 쭈뼛쭈뼛 들어갔다. 몸을 울릴 만큼 강렬한 비트의 댄스 음악을 따라 맨 뒷 줄에서 선생님의 동작을 힐끔힐끔 보면서 따라 했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관절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똑똑히 들렸지만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한 박자에 돌아서 착지하고, 왼쪽 한 번, 오른쪽 한 번 대칭을 맞춰서 팔과 다리를 뻗었다가 가져오고, 파도, 일명 ‘웨이브’라는 것도 타보려고 용썼다. 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기괴한 동작의 연속이었다. 수업 내내 아무도 날 의식하지 않는단 걸 되뇌면서 얼굴이 달궈지지 않도록 애쓰다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신발을 신고 학원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집에 오는 길에 '아이솔레이션(몸을 푸는 기본 동작) 신기해. 히히.' 이러면서 어쩐지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대로 영영 사람 구실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에 잠식되지 않았다. 그 뒤로 3개월가량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가수 검정치마의 Antifreeze 노래 가사처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웠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덕분에 그 시기의 여름은 때아닌 춤바람에 불안하지 않고 평소와는 달리 흥이 많았던 여름으로 추억한다. 조금 더 썰을 풀자면, 그래도 3개월 다니니까 대충 흉내는 내게 되면서 자신감도 붙었었다. 취업하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 아무리 어설픈 시작이라도 주기적으로 하면 구색은 갖춘다는 걸 몸소 배웠던 듯싶다. 


요즘의 안 하던 짓은 ‘등산’이다. 등산은 정말 질색팔색을 했었다. 걷기는 좋아하지만, 등산은 달랐다. 길도 반듯하지 않고, 경사가 뒤죽박죽에 올라간 만큼 그대로 내려와야 하고, 화장실도 없기 때문에 목이 말라도 물을 벌컥벌컥 마실 수도 없다. 조금 따듯해지면 모기가 극성이었고, 덥고 추운 것에 따라 겉옷을 입고 벗기를 반복해야 해서 등산은 가족끼리 여행 갔을 때나 갈까 말까였지 절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휴지기가 길어지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싶어졌다. 낮에는 유튜브에 함몰되지 않도록 집중할 거리를 찾다가 밤이 되면 헬스장에 갔지만 자꾸 가라앉는 느낌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묘안이 절실해졌을 무렵, 친구가 날이 따듯해진다며 꽃구경 얘기를 꺼내길래, 서울 둘레길이 불현듯 떠올라 제안했다.


“궁 근처에 성곽길을 복원했다는 뉴스 봤는데, 성곽 따라서 걸으러 가볼래?”


친구는 한 번씩 걸어본 길도 많았고, 루트별로 특징을 알고 있다면서 양재 시민의 숲 역부터 수서까지를 걷자고 했다. 평평한 양재 구간을 지나자 가파른 구간이 나왔다. 예상보다 높아서 산 아래로는 건물이 빼곡하고, 차들이 촘촘하게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올라가면 보이지 않았고, 등산로는 아주 고요했다. 가파를 때는 바닥을 보면서 걸음 하나를 옮기는 데에 신경을 쏟았고, 평평하면 멀리 보고 다리를 쭉쭉 뻗으며 걸었다. 서너 시간 만에 수서역에 도착해 둘레길 인증 도장을 찍었다. 그 도장이 다 뭐라고, 칸 안에 맞춰서 조심조심 찍는데, 그마저도 즐거웠다. 같이 걸었던 친구와 치킨 한 마리와 커피까지 먹고 나니 몸에 기운이 확 났다. 친구는 날 보고, 

“낯빛이 아까랑 달라졌어!” 라며 막 웃어댔다. 숨이 찼고, 땀을 많이 흘렸고, 발목이 아팠지만 상쾌했다.


둘레길을 걷지 않았다면 러닝 머신 위를 열심히 달렸겠지만 켜켜이 쌓여가던 찌뿌둥함을 털어내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역시 어차피 둘 다 죽는 거라면 하던 짓만 하는 것보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 게 조금 더 나았다. 하던 짓만 하면 죽는지도 모르게 가라앉아 죽어버렸지만 안 하던 짓을 하면 어색하긴 해도 하고 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가 흘러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청소까지 하고, 샤워하고서 마주한 거울 속 모습은 어제보다 생기 있었다.


인생 운영에 매뉴얼을 하나 더 추가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 아무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질 때면 안 하던 짓을 하기로. 나중에 돌아봤을 때 뿌옇게 보였던 지금, 땅바닥만 보고 한 걸음씩 겨우 옮기고 있는 이 시간이 우울로 점철되기보다 그 시간도 즐겁게 잘 지나왔다고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다음 성곽길은 또 언제 갈까나?


(검정치마의 Antifreeze의 한 부분 :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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