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오해에 대하여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술기운이 돌긴 했지만 그 밤은 낯설고 생경했다.
번호 56이 나를 여관으로 끌고 들어가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서둘러 옷을 벗기는 그의 손길 앞에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긴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처녀가 아니란 것’을 들킬까 봐 위축된 탓이었을까.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고백해야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체념이 올라왔다.
‘차라리 들켜버리자.’
저항하진 않았다.
숨이 막히고 몸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통증이 밀려오자 울음이 터졌다.
그는 무심히 말했다.
“처녀막 때문은 아니야. 몸이 거부하는 거지.”
그 말은 의학적 설명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그리고 몸을 밀어 넣었다.
새벽녘까지 몇 번의 접촉이 이어졌지만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반감이 올라왔다.
순결이라는 이름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움츠러들어야 할까?
성을 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죄책감으로 느껴지는 걸까?
거친 숨결을 담아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그가 낮게 말했다.
“제법…… 대담한데?”
그 말에 멈칫했다. 칭찬인지 놀람인지 아니면 비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순간 무대 위의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속마음을 숨긴 채 눈앞의 관객을 조롱하는 배우.
동이 트자 그가 이불을 홱 걷어냈다.
처녀혈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입을 다물었지만, 눈빛이 말을 대신했다.
‘봐라, 피가 안 나왔지? 그러니까 넌 순결하지 않아. 난 널 책임질 이유가 없어.’
그 무언의 이야기는 말보다 더 잔인했다.
수치심은 잠깐이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처음은 대학 1학년 때 교회 오빠였어. 그다음은 술김이었고,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친구도 있었어. 거의 매일 욕망을 소비하면서도 순결을 입에 올리더군. 그거 말고도 더 있어. 더 듣고 싶어?’
이 말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내 몸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삶의 기록이야. 하지만 잊지 마. 내 몸은 내 것이고, 내 삶은 존엄해.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다이아몬드야. 타인의 기준으로 내 삶을 정의하지 않겠어. 나는 오직 나만의 서사로 폭로할 거야.’
하지만 이 고백 역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침묵의 대가는 깊었다. 몸은 병들고 마음엔 단단한 벽이 쌓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번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진실을 묻어버리면 결국 누군가는 다칠 거야.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상처 입을 텐데…….’
세상은 조금씩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의 몸과 선택을 재단하려는 시선은 살아 있다. 누군가는 피가 나야 순결이라 했고, 순결 없이는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하려 들었다.
순결? 그건 자연이 준 것도, 신이 내린 것도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인습일 뿐이다.
그 거짓말에 속아 내 몸과 마음을 억눌렀던 시간은 끝났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이 내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순결 신화는 오늘도 누군가를 숨죽이게 하겠지만 나는 내 서사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