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닿지 못한 꽃
졸업 후 오데미안은 어렵게 취직을 했다.
그 회사는 이름만 회사였지 월급 한 푼 주지 않았다.
“그만둬, 이용당하는 거야.”
친구들이 말렸지만, 오데미안은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나를 써주는 데가 또 어딨겠어.”
그녀는 대학 시절 내내 자신만만했지만 사회는 그녀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했고 그녀는 그걸 너무 몰랐다.
결국 그 회사에서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도 싸워야 했다.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늘 반항했고, 결국 집을 뛰쳐나왔다.
그즈음 그녀는 남자 11과 동거를 시작했다.
사랑이라기보다 기댐에 가까운 관계였다.
처음엔 행복해 보였다.
함께 장을 보고, 늦은 밤 맥주를 나누며 이야기할 때만 해도 그가 그녀의 안식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오데미안은 울며 말했다.
“이제 나, 아무것도 못 하겠어.”
그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녀는 이전에도 남자 2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책임질 수 없다”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등을 돌렸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독립적이던 그녀의 입에서 ‘책임’이라는 진부한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그녀를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녀 안에는 늘 인정받고 싶은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녀에게 ‘책임’이란 결혼의 조건이 아니라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마지막 부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늘 ‘여성의 주체성’을 말했지만 사랑이 오면 그 논리는 힘을 잃었다.
자유롭고 싶어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속하고 싶어 했다.
그 모순이 그녀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얼마 후 그녀는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노동자를 돕고 싶다며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에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맞서는 용기라기보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내 결혼식 날 오데미안이 부케를 받았다.
그날 그녀는 유난히 예뻤다.
“나도 곧 좋은 사람 만나겠지?”
그 웃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몇 해 뒤 점쟁이가 내게 말했다.
“그 아이 혼이 당신한테 붙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외롭고 힘든 거예요.”
나는 미신이라 웃어넘겼지만 가끔은 그 말을 떠올리곤 한다.
내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오데미안.
그 순간 그녀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외로움이 마치 내게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주인을 잃어버린 부케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