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내 편이었다.
100미터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졌을 무렵 나는 검찰청에서 검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가해자가 밖에서 지내는 게 너무 힘들다며 집에 돌아오고 싶다고 하네요.”
검사의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을 보고 검사는 난처한 듯 말을 이었다.
“그러시면 접근금지를 3개월 더 연장해 드리죠.”
그러고는 안타까운 듯 혼잣말을 했다.
“그럼 이혼해야겠네…….”
그때 처음으로 ‘이혼’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날 검사의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의 흐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시작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스에서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에는 ‘맞을 짓을 했겠지’라는 식의 황당한 시선이 너무도 당연했다. 폭력은 개인의 문제로, 가정 내의 일로 취급되었고,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나 역시 부모님은 물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고립된 시간을 버텼다. 그런 가운데 ‘법이 생겼다’는 사실은 뜻밖의 힘이 되었다. 얼마간 모아둔 돈이 있었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마침내 가해자를 고발했다. 첫 번째는 취하했지만, 두 번째는 용서하지 않았다.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가해자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내가 집에 남고, 가해자가 거처를 옮기면서 이혼은 상대적으로 간단히 진행됐다. 보증금과 집을 맞바꾸기로 하고, 별다른 이견 없이 정리됐다. 아이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아픔은 남지만, 그땐 나도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가정폭력 사건에서 법은 피해자 편에 서려 노력한다. 내 경우 고발 의사를 분명히 밝혔을 때 제도는 비교적 충실하게 작동했다. 그 일은 쉽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침묵 속에 머무르는 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은 많은 경우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면, 대인기피증 등을 겪는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찾아보았다. 정신과 치료는 물론 각종 여성상담센터 등에서 상담도 오래 받았다. 상담을 통해 그동안 쌓여 있던 아프고 답답한 기억을 쏟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이 가엾어 보였다.
자조모임과 여러 프로그램에도 참가해 보았다. 특히 자조모임이 도움이 되었다. 같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통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다 보면 큰 깨달음을 선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 것은 글쓰기였다. 내 글을 불특정다수에게 발표하고 ‘좋아요’와 ‘구독’을 통해 내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자존감이 차오르고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가정폭력의 경우 나는 이혼을 선택했다. 아이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는 지금도 이혼을 권한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고서는 폭력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여기까지 올 때 나를 도와준 지원 제도들을 소개한다.
*여성긴급전화 1366|24시간 상담, 쉼터 연계, 법률 지원
*외로움 안녕 전화 120|말동무 상담(전화무제한 무료)
*보건복지콜센터 129|정신건강 상담 및 기관 연계
*해바라기센터 02-3672-0365|가정·성폭력 피해자 통합 지원
*대한법률구조공단 132|무료 법률 상담, 소송 지원 (소득 요건 있음)
*정신건강복지센터 |각 구청과 연계. 정기 상담 가능
*자조모임 및 피해자 모임|회복 동기 강화, 외로움 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