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그리움에 건네는 안녕
오데미안을 떠나보낸 지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마음은 늘 무거웠고,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마침표를 갖게 마련이다.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오래된 죄책감은 뜻밖의 계기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이도 자라 제 삶을 찾아 나섰고, 홀로 남은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대학 동문회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이 모인 민주동문회.
그곳에서 나는 이태원 분향소를 지키고, 민주묘역의 잔디를 뽑으며 아주 작지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
어느 해엔가 조용한 추도회가 열렸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동문들을 기리는 자리였다.
모교 신학관 앞 대형 화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르고 사라졌다.
그 순간 오데미안의 다정한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숨이 멎을 듯 놀랐고,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내가 결혼해 아이를 품고 가정에 머물던 시간 동안, 그녀는 거리로 나아가 노동 현장에서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타협을 모르는 그 우직함은 그녀의 빛이자 동시에 짐이었다.
세상의 모서리와 끝내 맞지 못한 채 그녀는 또다시 삶의 문턱에서 망설였고 이번에는, 어린 시절과 달리, 안타깝게도 그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대학 출신도 있었고, 함께 노동운동을 하던 동료들도 있었으며, 대학 시절 동아리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차분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또 다른 얼굴들이 그들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살아 있었다.
그러나 내게 남은 그녀는 그 다정한 빛 뒤에서 언제나 자유와 용기를 품고 있던 존재였다.
그녀의 동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녀를 기리자 내 안에 오랫동안 웅크려 있던 죄책감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아픔은 조용히 모습을 바꾸어 서서히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물결처럼 번져왔고, 그 슬픔은 다시금 가슴을 적셨지만, 그리움은 이상하리만큼 따스하게 나를 감싸주었다.
이제는 죄책감이 아니라 추억으로 그녀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언제나 세상 앞에서 당당했고, 진실했으며, 나약하지 않으려 애쓰던 사람이었다.
그 짧지만 치열했던 삶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했다.
이제 그녀는 내 죄책감 속 그림자가 아니다.
삶의 갈림길마다 나를 일깨워주는 이정표가 되어 여전히 내 곁에 있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품은 것이다.
삼십 년을 돌아, 마침내.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안녕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