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비 포옹 19화

사랑인 줄 알았다

반복되는 상처의 진실

by 몽돌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이후 다시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은 단지 ‘운이 나빴다’ 거나 ‘잘못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이 남긴 상처가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관계의 경계를 허물기 때문이다.


나도 그 모든 상황을 견뎌야 했다.

예전엔 사람들을 믿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성폭력 이후 산산이 무너졌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을 멀리하며 살았다. 사람들은 저 멀리서 웃고 떠들고 있는데, 나만 홀로 투명한 유리벽 뒤에 갇힌 기분이었다. 누군가 다가오면 반갑기보다 먼저 경계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이상하게도 거짓된 관심 앞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처럼 낮은 자존감 때문에 삶의 모든 선택이 바뀌었다. 누군가 “좋아해”라고 말해주면 그 한마디에 온 마음을 기댔다. 마음의 빈자리를 메우고 싶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 구별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있었다. 처음 그는 너무나 다정했다. 내가 무서운 꿈을 꿨다고 하면 밤새 전화기를 붙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넌 나 없으면 안 돼”라는 말조차 그때는 사랑의 고백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말은 곧 나를 옭아매는 밧줄이 되었다. 겉으로는 다정해 보였지만 그는 내 몸을 자신의 권리처럼 다뤘다. 거절은 무시되었고, 침묵은 동의로 둔갑했다. 점차 연락이 늦으면 화를 냈고, “너는 나만 보면 돼”라며 친구를 만나는 것도 막았다. 내 옷차림에까지 불만을 터뜨리며 내가 누구와 어디서 뭘 했는지 일일이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나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겠지”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이런 통제는 결국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내 과거는 다시 한번 가정폭력이라는 고통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폭력이 처음 있었던 날 나는 얼어붙었다. 몸이 또다시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내 뇌는 과거로 끌려갔다. 성폭력의 기억이 눈앞에 겹쳐졌고, 심장은 터질 듯 뛰는데 몸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사과하고 다시 안아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그 손길이 위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온기에 매달렸다. 그 순간만은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무너진 자존감과 깊은 외로움이 겹치자 폭력마저도 관계를 이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나는 그를 떠날 수 없다고 믿었다.


친구들은 묻곤 했다.

“왜 그런 남자들을 자꾸 만나?”

그 말은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성폭력으로 무너진 자존감은 폭력마저 관심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착각 속에서 가해자에게 점점 더 매달렸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이 서로 부딪히는 틈바구니에서 폭력은 내 안에 깊이 뿌리내렸다. 나는 어느새 무력감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그때 비로소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고리는 내가 끊지 않으면 영원히 내 목을 조를 것이다.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그의 전화에 바로 답하지 않기, 내 옷 내가 고르기, 상담사에게 마음을 털어놓기를 시작했다. 작은 균열이 생기자 고리는 서서히 헐거워졌다.


그러자 내 안에서도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늘 두려움에 차 있던 하루에 아주 작지만 숨 쉴 틈이 생겼다.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무서웠지만,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폭력의 사슬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끊는 일은 당신 몫입니다.”


이것은 나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려는 말이었다.

내 힘으로 이 고리를 끊어내야만 비로소 진짜 삶과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결심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내 안에 건강한 경계를 세워야 했다. 그리고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이야말로 치유의 첫걸음이었다. 얼어붙고 거절하지 못했던 나를 더는 탓하지 않아도 되었다. 약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몸이 배운 방식이었으니까.


그때 처음으로 ‘왜 그렇게밖에 못했니’가 아니라, ‘그래도 잘 버텼구나’ 하고 나를 다독였다.

오래도록 나를 짓누르던 자책감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상처 입은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 마음이 내 안에 조용히 숨을 불어넣었다.

그 숨결이야말로 내 회복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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