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 대에는 매년 6월이면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 다양한 교내 행사가 있었어. 당시 필독서였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수차례 읽었고, 똘이 장군이 주인공인 TV 만화에서는 북한 공산당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늑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어. 만화영화가 귀하던 그 시절에 똘이 장군을 계속 보면서 북한 사람들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모두 늦게 들어왔어. 혼자 마루에 앉아 대문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저 대문을 열고 갑자기 공산당이 쳐들어오면 어쩌지?' 하며 겁이 덜컥 났단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
그 후 한국은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이루었고, 북한의 경제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을 뉴스로 보았단다.
그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그리고 또 감사했는지 몰라. '하나님이 나를 조금만 위쪽으로 보냈다면 북한에서 태어났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했거든.
웃기지?
내가 알고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늘 많아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은 엄마의 최애였단다. 특히 이 넓은 지구의 세계 곳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어떤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아프리카는?
이란은?
극지방의 사람들은?
인도에서 태어난 내가 속한 계급을 벗어나 자유연애 끝에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면, 엄마는 명예살인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몰라. 또 만약 이슬람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하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지. 그리고 대한민국이 막 건국되던 시기에 태어났다면, 내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겠지. 전쟁으로 폐허가 돼버린 나라에서 살아가다는 게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네.
나의 의도나 계획은 전혀 상관이 없어. 1970년대 후반에,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자체가 나의 삶의 대부분을 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단다. 나의 삶의 대부분은 이미 정해졌고, 그 외 나머지 부분을 정하는 게 아마 어느 집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닐까? 유명한 영화 '친구' 속의 한 대사처럼.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뉴스를 도배했던 두 명의 ‘딸’ 이야기를 하려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이었던 조국은 잘생긴 외모와 큰 키 그리고 서울대 교수라는 지적 매력까지 갖추어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어. 그러다 딸의 고등학생 시절 논문 저자 등재, 인턴십 수료, 표창장 위조 의혹 등이 제기되었고, 이를 통해 대학 입학 지원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비판이 나왔지.
입시비리라는 의혹 제기만으로도 정치적으로 많은 기대를 했던 사람들은 등을 돌렸고 결국 사퇴했단다. 그 후 조국의 딸은 재판을 거치면서 의사면허 취소가 되고 대학입학 취소가 되면서 현재 학력은 고졸이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렬 정부의 검칠 총장이었던 심우정의 자택과 외교부 청사, 국립외교원을 압수수색했단다. 심우정의 딸이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으로 지원했을 때의 자격 요건이 맞지 않음에도 합격이 되었거든. 또 외교부 무기직 연구원 채용 과정에서, 처음엔 ‘경제·조사연구’ 분야 채용공고였는데, 딸이 지원한 ‘국제정치’ 분야로 채용공고가 변경된 정황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어. 결국 시민단체가 심 전 총장을, 전 외교부 장관 및 전 원장 등을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했거든. 아버지가 가진 힘과 권력이 딸의 대학교 입학과 그 후 취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서, 많은 청년들은 분노했고 부모들은 권력도 능력도 없는 자신을 원망했지.
'시험의 결과는 공정한가'
'공정한 경쟁이라는 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세상에 남겼단다.
두 사건 모두 엄마는 아직은 무엇이 진실인지 잘 모르겠어.
조국의 딸은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고졸이 되었지만 수집된 증거와 재판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일부 관련자가 고소된 상태이고, 심우정의 딸은 아직 수사 중이라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거든. 저 멀리 고려나 조선 시대의 음서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떤 집에 태어났느냐는, 때로는 노력보다 더 큰 힘을 가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묻고 싶단다.
엄마와 아빠의 딸로 태어난 너의 삶의 자리는 마음에 드니?
만약 네가 다른 나라, 다른 시대, 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너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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