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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을 잘 키우고 싶어

by 브리앙

오랜만에 간 동창회 모임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거든. 한 친구가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하더라.

“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당연하지! 나도 잘 키우고 싶어서 얼마나 애쓰는데!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

“학원에서 모의고사 보는데 열심히 안 해서 잔소리를 한 바탕했잖아.”

“그랬구나! 애들이 다 그렇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 끝나지 않는 육아의 어려움이 서로 깊이 공감되더라. 오랜만의 외출이라 화장도 하고, 비싼 와인도 마시고, 거기에 끊이지 않는 대화까지 더해지니 완전 즐거운 시간이었어. 이번 달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목욕할 때 온수 좀 아껴 쓰라고 식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안 쓰는 전기 코드 뽑으러 방마다 다녔던 나의 모습은 잠시 잊었지. 음식을 다 먹었지만 치우고 설거지 안 해도 되니 더 좋더라. 하지만 예쁘고 우아했던 시간은 신데렐라의 마법 호박 마차처럼 금방 끝났어. 마법이 풀릴 시간이 다가왔으니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지. 막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문득 우리가 이야기했던 ‘잘’은 정말 같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 흔히 의대를 보내고 SKY를 보내면 잘 키웠다고 하는데, 그럼 SKY나 의대를 못 가면 잘 못 키운 건가? 7세 고시에 관한 뉴스를 얼마 전에 언뜻 보았는데, 7세 고시는 준비도 하지 못한 너희들은 아예 망한 걸까?


흔히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라고 이야기하잖아. 고등학교 정문에 올해 SKY 몇 명, 의대 몇 명 보냈는지 자랑스럽게 붙어있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야 해.”

“사람을 잘 만나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어.”

“건강이 최고니까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

SKY 보낸 엄마, 대치동 맘, 다이어트와 운동 관련 동영상이 유튜브에 넘치다 보니, 무언가 더 ‘잘’ 해야 뒤처지지 않을 불안감이 생기는데 도대체 ‘잘’ 한다는 게 무엇일까? 무엇을 얼마나 해야 ‘잘’이라는 단어에 적합할까? 너희들을 잘 키우려는 마음은 ‘잘’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갑자기 버거워졌어.


너희가 아기였을 때는 이유식만 잘 먹어도 너무 기쁘더라. 걸음마를 뗄 때, 말을 시작할 때, 그 순간마다 '잘 자라고 있다'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두 다리로 걷고, 말을 하고, 밥을 먹는다고 ‘잘 자란 인간’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잘’ 키운다는 의미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키운다는 의미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간 다움은 무엇일까?

너희들이 글을 읽기 시작하고 학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고민은 깊어졌지. 물론 40대의 생각과 행동처럼 10대가 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은 하지만 학교에서의 생활, 식사예절, 학생으로서 할 일 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도대체 얘는 언제 인간이 되는 거야?’ 하는 한숨 섞인 혼잣말을 하곤 했어.


2025년 뉴스에 연일 오르는 가슴 철렁한 사건은 서울대를 졸업하거나 육사를 마친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인간으로 잘 큰 다는 기준이 명문대에만 있지 않은 것 같아. 논문을 조작하고, 경력을 위조하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간 사람을 제대로 된 인간이라 말하기도 어렵지.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을 훌륭한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너희들이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지도 않아.


오히려 차가운 겨울밤, 거리에서 방한용 은박 비닐을 덮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젊은이들이 더 멋져 보이더라. 부당한 일에 맞서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잘 자란’ 사람 아닐까? 트랙터를 몰고 올라왔지만 막혀버린 남태령에서 밤을 새운 농민들과, 그들과 함께하며 길을 열어낸 사람들처럼 말이야.


지금 우리 사회는 잘못된 일들이 너무 많아. 법을 어긴 사람들이 오히려 법 위에 군림하고, 상식적인 처벌을 요구하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됐지. 그래서 너희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할지 더욱 고민한단다. 옳지 않은 걸 보고도 피해입을 지 모르니 못 본 척하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잘 자란 너희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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