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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물려받은 증오와 전달받은 사랑을 가장 미국적인 방식으로

by 도연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개봉하기 전부터 기대가 정말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영화를 더 재밌게 보기 위해서라도 기대를 안하려고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게 되지가 않더라구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리코리쉬 피자>, <펀치 드렁크 러브>, <마스터>, <데어 윌 비 블러드>, <팬텀 스레드>까지 모두 재미있게 봤던 데다가, 베네치오 델토로와 디카프리오, 숀 펜까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그 <마스터>보다도 높은 평점을 매겨대면서 폴 토마스 앤더슨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고 말을 하니깐 기대감이 도무지 주체가 안되었습니다. 지금 끝까지 다 감상한 입장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마스터>나 기타 소위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할리우드의 걸작에 비견될 정도이기는 하지만 개인 취향으로는 반의반수 정도 아래라고 여겨졌습니다. 사실 제가 액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도 하구요. 대중적인 영화라고는 하지만 <어쩔수가없다>처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영화를 딥하게 좋아해야 이해가 되고, 어느정도의 배경지식도 필요한 영화라, 일종의 진입장벽도 느껴졌습니다. 물론 위대한 영화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이해를 못해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도 뛰어납니다.




밥, 퍼피디아, 록조, 스타워즈


영화의 첫번째 매력은 도발적이고 개성적인 인물들입니다. 주인공 밥 퍼거슨이 특히 그렇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에서도 그렇지만 PTA 감독의 영화에서는 유독 나사가 빠진 부족한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밥 퍼거슨도 개중에 하나이죠. 혁명가였지만 지금은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사는 밥은 디카프리오 특유의 분노 연기와 코미디 연기를 흡수하여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가 됩니다. 마치 <마스터>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그랬듯이요. 특히 배우 개그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차에서 뛰어내리려는 밥에게 카를로스가 톰 크루즈처럼 뛰어내리라고 말하지만 끝내 뛰어내리지 못하는 밥의 얼빵한 모습이나, 어린 금발의 백인 여성들만 골라 만나는 디카프리오에게 난 흑인 여자 좋아!라고 크게 외치게 만드는 대사들이 그랬습니다. 이 영화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오마주하고 있기도 한데요. 밥 퍼거슨은 보바 펫을 오마주한 캐릭터로 보여집니다. 특이한 선글라스도 그렇구요.


퍼피디아 베벌리 힐스도 영화의 뛰어난 완성도를 뒷받침합니다. 프렌치 75의 행동대장이면서 근육질 백인 군인을 힘으로 누르는 흑인 여자라는 설정은 그동안의 미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총을 마구 난사해대는 이미지도 그랬구요. 그러면서도 동료들을 배신하고 끝내 록조의 보호 아래서 살기를 거부한 채 멕시코 국경을 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등장은 종료됩니다. 저는 그녀의 이름이 결국 프렌치 75의 배신자가 되고 마는 그녀의 행보를 암시한다고 보았는데요. 말 그대로 베벌리 힐스의 강아지가 되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연상하는 작명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록조도 그렇습니다. 록조는 아버지에 관련된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는 장면이나 군인으로서의 고압적인 모습을 볼때 다스 베이더에 일부 영감을 받은 캐릭터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카리스마 있는 악당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입니다. 여고생을 쉽게 제압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침을 발라 머리를 펴는 경박한 행동들은 관객들이 그에게 두려움보다는 비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합류하고 싶어하는 그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광기와 집념,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이면서도 흑인 여성에게 흥분하는 그의 성적 성향같은 기괴한 일면들이 그를 뛰어난 악역으로 만들어줍니다. 숀 펜의 연기 또한 그의 캐릭터만큼 대단히 뛰어났구요.




정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액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가족 영화나 정치 영화, 블랙 코미디 영화입니다. 원작 소설 바인랜드가 정치적인 소설이나 어찌보면 당연해보이기도 하지만요. 프렌치 75는 극단적인 혁명 투쟁 단체입니다. 프렌치 75의 단원들을 연기한 배우는 죄다 뮤지션이지요. 전작 <리코리쉬 피자>의 주연을 포함해서요. 특히 퍼피디아는 극단적인 좌파로 보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극우파에 KKK를 연상케 하지요. 성인 니콜라스를 표방하지만 경례는 히틀러와 나치를 섞어놓은 기묘하고 우스운 장면도 등장합니다.


아까 인물들 분석할 때 빼먹었는데요. 시종일관 여유롭고 유쾌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카를로스가 이민자들을 대피시키는 모습은 의미심장합니다. 밥이 멋대로 집에 들어와서 미안하다는 밥의 사과에 너희는 몇백년 전부터 그래왔다는 대사도 다분히 정치적으로 들리죠. 록조의 최후는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 같습니다. 실패한 혁명가가 변절자로 돌아서는 상황도 무언가 익숙합니다. 마지막으로 밥이 윌라에게 피아식별 장치를 챙겨가라고 다그치며 윌라의 친구들을 몰아붙이는 장면도 정치적인 블랙 코미디입니다. 바이섹슈얼인 윌라의 친구들의 정체성에 어이없음과 분노를 표하지만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인 밥의 위치도 그렇고, 딸에게 무슨 짓을 하든 똑같이 갚아줄거라고 딸의 친구를 통제하고 윽박지르다가 딸이 돌아오자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며 둘러대는 밥의 모순적인 반응까지요. 밥이 보던 영화 <알제리 전투>도 혁명 투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심지어 로조의 인디언 해결사도 등장하는데 그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백인 용병들을 상대로 윌라를 구하려다 사망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러한 정치적으로 민감한 레퍼런스들과 질문들을 가득 던져놓고 답을 하지 않습니다.




성장 영화


이는 정치적인 영화가 기본적으로 PTA가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PTA는,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필모그래피를 거쳐가면서 점점 인간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를 이어갑니다. 이는 <마스터>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그는 인간의 여러 면모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욕망과 불완전함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는 밥에 대한 탐구가 진행되죠. 여기서 제게 다가온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그것은 왜 굳이 밥이 주인공이어야만 했었냐는 질문입니다. 애초에 원작 소설의 주인공은 퍼피디아와 윌라일테고요. 영화의 초반부에서도 퍼피디아가 극을 주도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멕시코로 떠나고는 엔딩까지 코빼기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윌라도 앞서 제가 쓴 스타워즈 이론에 따르면 주인공 루크의 위치입니다. 록조의 표적이기도 하죠. 둘이 주인공이 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물론 디카프리오를 써먹어야 하니까. 라고 대답한다면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이 문단만 보시면 밥은 주연들 가운데서는 그나마 가장 중요도가 덜합니다.


그런데도 PTA는 밥을 주인공으로 선택합니다. 밥은 영화 내내 앞서 던진 정치적인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고 심지어 우습기까지한 질문들을 받습니다. 어찌보면 마블 영화에서 깔깔이로 깔아놓기 적당해 보이는 코미디 장면들이기도 하죠. 지금은 몇시입니까? 만나야 할 접선지는?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암호. 밥은 어느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혁명가이길 꿈꾸었던 밥은 혁명의 변질과 절대적인 권력의 공포 앞에 무너져 내립니다. 그는 정체성을 잃어버리죠. 그는 영화 내내 구르고 볼품없이 쫒기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딸이 겨눈 권총과 다음 세대가 던지는 마지막 물음에 그는 대답하고 말죠. 너는 대체 누구야? 밥은 암호를 대려다말고 난 네 아빠야!라고 소리치며 윌라에게 달려옵니다. 그는 윌라의 아버지이기를 선택합니다. 당시 윌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록조임을 알아버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미심장하죠. 감독은 양극단으로 뻗쳐있는 미국의 증오 앞에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퍼피디아와 록조는 영화 내에서 미국의 양 정치극단이 내뿜는 증오 외에 다른 정치적인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느냐의 예술임을 고려하면 퍼피디아가 멕시코로 향한 이후의 투쟁도, 밥이 윌라가 친자가 아님을 알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영화의 궁극적인 히로이즘인 윌라와 밥의 가족애에 비하면 영상화될 가치가 적었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연출과 액션


인상깊은 연출도 많았어요. 원래 PTA 영화는 성적인 코드가 많은데 이번 영화에서는 초반부에 몰아서 넣었더라구요. 퍼피디아가 록조에게 발기하도록 성적인 모욕감을 주는 동안 폭탄을 터트리려고 손을 아래위로 열심히 흔드는 밥의 이미지나, 뇌관을 만지작거리면서 퍼피디아와 관계하는 밥의 이미지도 그랬어요. 어찌보면 퍼피디아는 혁명의 뇌관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생각도 영화가 끝나니까 들더군요. 크게 터뜨리는데 필수적이지만 파멸적이기도 하니까요. 영화의 오프닝도 멋졌는데요. 퍼피디아와 함께 환상적인 미국의 석양을 비추다가 180도 카메라를 돌려 퍼피디아의 뒷모습을 비추자 아래에는 이민자들이 갇혀있는 수용소가 늘어진 모습이 비추어지는 장면이 인상깊었어요.


마지막 자동차 추격전도 대단했습니다. PTA의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이 비추어진 모습이 아닌 자동차 추격전만으로 손에 땀을 쥐어지는 장면을 보았다는게 참 새로웠습니다. PTA가 멈추지 않고 도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도로. 엇갈리는 윌라와 밥, 록조 그리고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해결사, 사막의 황량하고 광활한 이미지가 잘 어울렸습니다. 왜인지 밥은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윌라에게 향하지 못하고 헤메이는 게 상징적이기도 했어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해결사는 파란 차에 탔지만 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요. 푸른 자유로 대변되는 겉모습을 하지만 속은 KKK의 상징색처럼 시뻘건 피를 끼얹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외에도 문을 두드리는 등의 신사적인 겉모습을 하지만 끝내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록조와 특수대원들의 이미지도 기억에 남네요. 사실 찾아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더 있을텐데 더 이해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미국의 극단적인 증오를 가족애로 묶어낸 거장 감독의 특별한 액션 영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였습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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