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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 <오발탄>

오발된 1950년대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여명의 총알

by 도연호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두 시기로 분류합니다. 하나의 전성기는 제 출생년도 2003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한국영화의 2번째 르네상스 시기이죠.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 이창동 감독, 홍상수 감독까지 대단한 감독들이 우후죽순으로 동시에 쏟아나온 시기입니다. 또 하나의 전성기는 1960년대에 찾아왔습니다. 물론 한국영화는 이전에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해방 전후로 일제의 자본이 모조리 빠져나가고 그동안의 친일 작품으로서 이어져오던 영화의 줄기가 갑작스레 끊어지며 한국영화는 큰 부침을 겪게 되었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영화계의 근대 산업화에 크게 이바지하며 한국영화계가 다시 정착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과한 검열과 반공영화에만 집중하도록 영화계를 압박하는 행위는 일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나쁘게 평가되기도 하죠. 그래서 이 시기에는 양에 비해 좋은 질의 영화가 나오지 못했었구요.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이전에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이 있었다.


허나 이렇게 1950년대가 지나고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 감독이 한꺼번에 등장하며 한국영화는 각본적으로나 연출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놓이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할리우드 영화에 밀리지 않았어요. 각본의 경우, 조악한 이전의 각본을 버리고 한국 근대 소설을 그대로 각본으로 활용해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연출적으로도 미장센이 대단히 훌륭하고 세련되게 바뀌어요. 특히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시네필이라면 꼭 보셔야 할 영화입니다. 수직적인 방식으로 계층 구조를 묘사한 점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연상케하고 멋진 미장센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연상케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 <마부>라는 1961년 영화는 한국 영화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었네요. 문득 드는 생각이, 한국은 경제, 사회, 예술 분야에까지 인재 창출로 이윤을 벌어들이는 대표적인 나라가 아닐까 싶어요. 여튼 두 한국영화의 전성기에도 모두 전세계적으로도 뒤지지 않을 재능있는 감독들의 영향이 컸었네요.




줄거리와 결말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제목과는 대조적으로 1961년 한국영화 전성기의 서막을 쏘아올린 작품입니다. 이범선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요. 아마 고3 수험생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계실 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읽고 계신 수험생 분, 혹 이 소설을 모르신다면 조용히 폰을 끄고 공부하러 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오발탄은 조금 이례적으로 소설도 영화 각본도 평가원에 출제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니까요.


<오발탄>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삼남매 철호와 영호, 명숙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철호는 전쟁통에 미쳐버려 '가자'만 외치는 어머니, 미군에게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명숙, 할 일 없이 놀기만 하는 영호와 영양실조에 걸린 임신한 아내까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철호의 처지를 비유하는 중요한 소재는 아픈 사랑니인데요. 철호는 치통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돈을 아끼기 위해 이를 뽑지 않습니다. 한편 영호는 설희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명숙은 경식이라는 상이군인 연인과 결혼 문제로 갈등을 빚습니다.


이제 결말입니다. 보실 분은 여기서 멈추어 주세요. 세 남매에게는 더 큰 비극이 닥칩니다. 설희는 평소 자신을 스토킹하던 청년에게 살해를 당합니다. 영호는 가난한 처지와 연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은행강도를 하다 붙잡혀 감옥에 들어갑니다. 명숙의 연인은 다리가 불편해 그녀를 지키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며 그만 먼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죠. 철호가 영호를 면회하고 집에 오니 만삭의 아내는 죽어있습니다. 이성을 잃어버린 철호는 치과에 가 사랑니를 모두 뽑아버립니다. 택시에 탄 그가 횡설수설하며 목적지를 계속 바꾸자 기사는 그를 오발탄이라 지칭하죠. 철호는 조용히 자신은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자조하며 미쳐버린 어머니처럼 조용히 '가자'고 중얼거립니다. 이렇게 끝없이 닥치는 연쇄적 비극은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이 생각나게 하기도 했네요.




오발탄과 푸른 나라


우선 영화의 각본은 소설과 조금 다르고 이질적이라는 점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호의 연인 설희는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이고 경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만큼 두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은 감독의 생각이 조금 더 개입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오발탄은 무엇일까요? 오발탄은 표면적으로는 설희의 방에서 꺼내온 권총을 영호가 도주 중 허공에다 발사해버린 장면을 일컫습니다. 하지만 엉망진창인 해방 전후 시대에 대한 영호의 갈 곳 없는 분노가 은행강도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발사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설희의 죽음도 오발탄입니다. 설희를 스토킹하던 청년은 본래 쾌활하고 사교적이었음이 암시되죠. 시대의 그늘에 잠긴 청년은 자신의 분노를 설희에게 표출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막을 수 없는 비극 한가운데 놓인 철호 또한 마지막에 스스로가 언급한대로, 오발탄입니다.


두번째로 '가자'라는 대사입니다. 표면적으로 삼남매의 미쳐버린 어머니는 고향인 북한으로의 귀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그녀는 갑자기 푸른 나라로 가자고 말을 바꿉니다. 이는 영화 내부적으로는 일그러진 세상에 대한 공포와 벗어나고자하는 강박이 만든 결과이겠죠. 철호는 미친 어머니를 조용히 관망하지만 결국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무너져 똑같이 '가자'라는 말을 뱉으며 미쳐버렸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당시 반공 정책에 북한으로 가자는 대사는 좀 그런 부분이 있으니 푸른 나라라고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따로 마련해야 하기도 했겠네요.




장면과 연출


인상 깊은 장면과 연출을 꼽아볼게요. 먼저 경식이 술집에서 창문을 깨며 시작되는 오프닝과 영호가 분개해 창문을 깨는 장면이 유사하게 매치된 점이 기억이 납니다. 설희의 집을 방문한 영호의 앞에 맹인이 길을 짚으며 돌아다니는 기괴한 장면과 경찰에게 정신없이 쫒기는 영호의 귓가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알고보니 목을 매단 엄마의 등에 매달려 있는 장면도 대단했습니다. 당시의 참담한 시대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어요. 초기 한국영화로서는 흔치 않게 몽타주를 잘 활용한 장면이었지요. 특히 <오발탄>의 은행강도 장면은 지금 보아도 촌스러운 구석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추격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이 됩니다. 할리우드의 갱스터 영화를 연상하게 했죠. 실제로 상이군인인 영호가 상이군인을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제안을 받고 모욕감에 떨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정작 <오발탄>이 해방 전후 상이군인들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기도 했었어서요.


마지막으로 두 형제 영호와 철호,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철학이 대비되는 대화 장면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는데요. 해방 전후 시대를 대하는 서로 다른 형제의 대립과 존중이 잘 드러나 좋았습니다. <오발탄>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복원을 잘 해주어서 유튜브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한국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나 흑백고전영화를 보고 싶기는 한데 지루할까봐 걱정이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추천 이유를 꼽자면 최근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개봉했는데요. 이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레퍼런스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 <오발탄>을 보신 분들이 영화를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오발탄> 자체도 워낙 재미있기도 하구요.


어그러진 시대에 목도한 비극과 오발탄들의 처절한 저항을 다룬 영화. 한국영화 전성기의 신호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입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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