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수와 효심의 충돌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시어머님은 증조 시할머니가 장수해서 시집살이가 고되었다 했지만, 65세에 시부모님 댁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실제 고된 시집살이는 약 3년 정도였다. 시어머님은 동네 인근에서 환갑을 넘긴 장수로 손꼽히는 증조 시할머니를 모신 결과, 그 마을 이장이 수여하는 효부상을 받았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증조 시할머니는 단명하셨다. 61세, 관리가 잘 된(여러 가지 의미에서) 지금의 중년이라면, 게다가, 타고난 동안이라면, ‘아줌마’라는 호칭에도 발끈할 수 있는 나이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아마도 자신들의 장수에 흠칫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부양했던 윗세대들이 60세 전후로 사망했고, 자신이 결혼 후 부모를 부양한 세월이 지금처럼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처럼 내가 늙어가면서 더 늙은 부모를 부양해 본 적이 없다. 부모가 수립한 수명의 신기록을 매년 경신하면서 살고 있기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는 생명의 법칙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느끼며, 조금만 더 버티면,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나이까지 살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이 있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장수 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후진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부모 세대는 다양한 형태로 그들 나름의 장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젊은이보다 더 건강한 신체 나이를 유지하고, 어떤 이들은 거동이 어려워 휠체어와 간병인에 의지해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병원 침대에 누워 간신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장수 시대의 노후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등의 건강한 논의는 관련 학자들에게 맡긴다. 장수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너무나 당연한 기쁨인 만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을 직간접적으로 부양하고 있는 지금 중장년층 세대의 암울한 현실 풍경이다. 우리의 부모는 콜럼버스처럼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듯,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로부터 이런 장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전해 들은 바가 없다. 그래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는 중이다. 그들은 고의성이 전혀 없었지만, 자녀세대인 현재의 중장년층에게 어쩔 수 없는 여러 가지 윤리적 부담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자녀 세대인 우리와 충돌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고, 그래서 우리는 ‘나도 늙고 힘들다.’라는 무언의 아우성을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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