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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수는 재앙인가?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부모의 장수는 기쁜 일이다. 가족, 특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장수는 기꺼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과 그들을 직접 부양해야 하는 우리 세대의 상황은 꼭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의 외양과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다. 겉모습만 보고서는 그 사람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워낙 젊음, 동안 등을 숭상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의학의 발전이 60대도 50대처럼, 혹은 80대도 60대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뒤, ‘신체 나이’, ‘혈관 나이’ 등의 새로운 형태의 나이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50세인데, 신체 나이가 40세로 나올 수도 있고, 건강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면 60세가 나올 수도 있다. 이렇듯, 자신의 노력에 따라 젊음과 건강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의 부모 세대는 얼마든지 건강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얼마나 오래 숨을 쉬고 살 수 있느냐 보다, 내 두 팔과 두 다리로 건강히 생활할 수 있는 노후가 가능한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누군가의 보조가 있어야만 식사하거나 배변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본인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빌어야만 생활이 가능한 ‘공동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지인 A의 사례를 보자. 그녀의 부모님은 연세가 90대다. 모두 60대부터 성인병이 시작되었다. 보통은 노화가 시작되면, 당뇨병이 발견되면서, 고혈압, 고지혈증, 협심증이 순차적으로 오게 되고, 그다음엔 크고 작은 시술이 시작된다. A의 부모님은 거기다가, 신장이 병들고, 방광, 대장의 문제도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병원에 동행하는 돌봄만 필요했고 3형제는 돌아가면서 각기 회사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동행했다. 방광, 대장이 제 기능을 못 하면서부터 기저귀가 필요해졌고, 타인의 돌봄이 없으면 식사와 배변이 모두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식사 후 챙기는 약만 수십 종류에 이른다. 물론, 나라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으로 요양보호사가 집에 와서 그녀의 부모님을 돌보기도 하고, 이른바 데이케어센터라고 불리는 주간요양보호센터에 부모님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들은 자신들의 생활 패턴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 특성이 있고, 남의 손을 빌리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예상보다 많다. 그래서 A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부모님과의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져, 형제들과 논의를 한 끝에 장남인 오빠의 집에 모시기로 했다. 모시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오빠 내외는 이혼까지 거론하는 불화를 겪게 되었고, 부모님의 부양 문제는 지금까지 계속 갈등 중이다. 오빠와 남동생은 부인과의 불화를 두려워하고, 유일한 딸인 A에게 자꾸 부양의 부담을 지우려 해서, A는 오빠와 남동생 모두와 불화를 겪는 중이다.


또 다른 지인 B의 경우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계시는데 현재 89세다. B의 어머니도 여러 지병이 있었고, 요양보호사가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단계를 거쳐, 요양원에 들어갔다. 요양원에서 주로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나마 있던 근육마저 소실되었다. 그러다가 위급상황이 생기면, 바로 인근 병원에 보내져 응급 치료를 받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B는 요양원의 연락을 받고 회사 일은 덮어놓고, 급하게 병원으로 출동하길 여러 번, 간신히 위급한 고비는 넘긴 채 어머니는 다시 요양원에 돌아왔다. 처음에 요양원의 호출을 받았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 하려고 회사 일도 팽개치고 달려갔으나,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귀찮음과 실망감을 느끼며 병원에 가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가장 솔직한 감정은 어쩔 수 없이 피곤함이라고 털어놓는다. 초반에는 임종을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치 언제 돌아가시나 기다리는 사람처럼 지친 마음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고자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A와 B의 부모님 모두, 50대 이후로는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으며, 보유한 재산은 집 한 채가 전부이다. 자녀들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고, 지금이 가장 지출이 많은 시기이다. 부모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형제들과 공동으로 돈을 내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부모님이 주택연금을 받거나, 집을 줄여서 여윳돈으로 병원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집 한 채 물려주기 위해, 절대로 부동산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고 한다. 자녀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차피 물려줄 재산이라면, 지금 당장 필요한 병원비부터 처리하는 데에 쓰자고 주장하지만, 부모의 생각은 다르다. 집은 집이고, 지금 필요한 병원비는 자식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가 부모의 생각이고, ‘언제까지 끝을 알 수 없는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나’는 자녀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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