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신피로 치료하기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부신피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신피로가 스트레스에서 오기 때문에 마음의 즐거움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신피로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거의 대부분이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부신피로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도대체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가뜩이나 약한 몸이 감당을 못했었다. 내 소원은 내가 로봇이 되는 것이었을 정도였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부터가 너무 힘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없어진 삶이었으니 다시 회복한다는 일이 암담했었다. 무언가를 다시 해 봐야 하고 싶은 일인지 알 수가 있을 텐데.. 삶의 열정이 없으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것도 스트레스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기회는 정말 우연하게 찾아왔다.
번역을 하는 딸아이를 통해서다. 딸아이는 8년 차 번역가다. 원래는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었는데 AI덕분에? 하루아침에 그 일이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검수하는 일을 한다. 당연히 수입이 많이 줄었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일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영어 동화책을 검수하고 번역하는 일이 들어왔다. 시리즈라서 일을 놓치고 싶지는 않은데 하고 있는 일이 있어 감당하기가 난감하다고..
잠시 내가 정신줄을 놔서..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하는 데까지 해 줄 테니까 딸이 마무리해서 보내는 걸로 해 보자고 무조건 받으라고 했다.
아이들 둘 다 영어 동화책으로 키웠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동화책도 어지간히도 많이 읽었다. 요양원으로 일을 나가기 전까지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영어 동화책과 우리말 동화책을 쌓아 놓고 읽고는 했었다. 그냥 동화책에 파묻혀 있으면 힘든 현실이 동화 속 나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동화책 속으로 도망을 간 것 같지만..
아이들에게 영어를 해 준 경험으로 나도 영어 동화책으로 영어 원서 읽기를 시작했었다. 지금은 4년째 영어책을 읽는다. 지금은 동화책보다는 조금 레벨을 올려서 읽고 있다. 영어 성경의 4 복음서 정도는 우리말 읽듯 읽을 수 있는 정도로 만들었다. 아직 어려운 책은 힘들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으면 웬만한 책은 80~90%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우선 테스트로 온 것을 검수해서 보냈고, 다행히 바로 OK가 왔다. 그런데 웬걸! 검수가 아니라 번역으로 해 달란다. 당연히 보수는 검수의 2배다. 딸아이에게 나도 보수를 달라고 했다. 당연히 농담이었다. 내가 그렇게 보수를 받고 번역을 할 실력이 안 되는 것은 나도 알고, 딸도 알고,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니까!
그런데..
동화책을 읽고 번역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 아날로그라 노트북 화면으로 바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모든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 과정에서 대충의 내용 파악이 된다. 그다음은 아는 단어지만 조금이라도 애매한 단어는 찾는다. 그렇게 두 번을 읽고는 써 놓은 문장 아래에 연필로 대충 번역을 해서 딸아이에게 주면 딸아이가 다시 정리를 하고 포토샵을 해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내가 번역한 것을 본 딸아이가 생각보다 잘해서 자기가 일할 시간을 2/3는 덜었다고 자기가 받는 보수의 반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딸아이가 하면 금방 끝날 일이다. 엄마가 너무 좋아하니까 기회를 주는 건 줄 안다. 그래도 좋다. 그리고 고맙다.
번역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지를 내가 해 보면서 알게 되기도 했다. 그냥 읽어나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을 만든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경험한다. 아이들 동화책이지만 가장 좋은 표현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리다 보면 약간의 스트레스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는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즐거운 스트레스니까!
요양원 일을 하면서 번역일도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긴다. 좋아하는 번역을 해야 하니까 시간 관리를 하려고 무척 애를 쓰게 된다. 당연히 하루 일과의 루틴이 생겼다. 삶의 루틴은 자율신경실조증 환자에게 정말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부신피로도 치료하고 자율신경실조증까지 치료에 도움을 받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