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 그리고 그리움으로 익어가는 삶

사람과 기억 속으로

by 정 영 일

[불광불급, 그리고 그리움으로 익어가는 삶]

나이가 들수록,

평온한 하루보다도 가슴이 뛰던 젊은 날의 열정이 더 자주 떠오릅니다.


문득 기억의 문이 열리는 날이면,

미치도록 몰입했던 순간들이 조용히 마음을 두드립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이 말은 이제,

내 젊은 날의 무모하지만 뜨거웠던 시간을 대변하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임원이 되었던 날,

믿기 어려울 만큼 단단히 올라선 자리 위에서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했지요.

"그래, 여기까지 왔구나."


골프장에서 언더파를 기록하던 하루,

펜을 들고 밤새 글에 몰두하며

‘살아 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꼈던 시간들…


돌아보면,

한 번 빠지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든 열정의 출발점은 결국,

“좋아했기 때문”이었겠지요.


도전을 즐기고,

어려움은 오히려 게임처럼 받아들이던 그 시절.

지금도 문득,

그때의 나를 그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자주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한 벗.


오해도 있었고,

서운함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불쑥 떠오릅니다.

"한 번쯤, 그냥 보고 싶다."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삶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감정은 오르내리고,

관계는 매끄럽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건 결국

'사람’과 ‘기억’이라는 걸요...


지금의 나는

모든 걸 다 안다고 착각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 부족함은

무언가를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그때의 뜨거운 열정과

놓쳐버린 인연에 대한 조용한 그리움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슴속 깊은 곳에

아직 꺼내지 못한 이름 하나쯤 묻어두고 있지 않나요?


그 이름을 떠올려 보는 일. 그 시절을 가만히 되새겨 보는 일.


그건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여전히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따뜻한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도, 그 벗을 잊지 못하는 당신도.


그 모든 기억은

시간을 통과한 우리의 선물이며,

지금 이 순간,

조용히 익어가는 삶을 위한 귀한 밑거름이니까요.

(작가의 말)

가끔은 지나온 시간들이 더 진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시절이 부끄럽기보다 고맙고,

그 사람이 미운 대신 그립습니다.


이 글이,

당신 마음 한 편의 ‘그때 그 사람’에게

조용한 인사를 전해주는 작은 다리가 되길 바랍니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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