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로또, 내가 매주 샀더라면, 지금쯤..》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날 때면 습관처럼 몇 천 원짜리 로또를 사곤 합니다.
벌써 20년 전, 직장에 다닐 무렵 이야기입니다.
당시 고객사 중 하나가 포항공대였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곳이었죠.
사실 ‘방문’이라기보다는, 제게는 작은 탈출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일 핑계를 대고 잠시 한숨 돌릴 겸, 기차 타고 내려가
그쪽 전산팀 형·누나들과 소주 한잔, 당구 한 게임.
몇 번 하다 보니 자연스레 “형”, “누나”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한 노인이 로또 번호 다섯 개를 또렷하게 알려주는 꿈..
그 당시 로또는 지금처럼 주택복권이 아니라, 진짜 "로또 복권"이 막 자리 잡을 때였습니다.
꿈에서 들은 숫자는 1, 3, 8, 20, 21.
너무 생생하고 묘해서, 다음 날 바로 집 근처 로또 가게에서
그 다섯 숫자를 적고 자동 번호 하나를 더해 두 장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늘 그렇듯 바쁜 일상 속에 까맣게 잊고 말았죠.
며칠 뒤, 다시 포항공대를 방문했습니다.
늘 그렇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소주잔이 몇 번 돌던 중
문득 그 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내가 얼마 전에 노인한테 번호 다섯 개를 들었거든?”
그 얘기를 듣던 전산팀 형이 말없이 제 손을 끌더니 근처 로또 가게로 데려갔습니다.
“네가 말한 번호 그대로 한 장, 자동으로 한 장 더.
돈은 네가 내. 그리고 누가 당첨되든 5:5야.”
둘이 사진 한 장 찰칵. 웃으며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그 주는 당연히 꽝. 형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꿈, 똥꿈 아니냐?”
“하하, 맞아요. 똥꿈이었네요.”
그렇게 실실 웃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두 달 뒤.
TV에서 로또 추첨 방송을 멍하니 보던 그날 밤.
1번, 3번, 8번…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꿈에서 들었던 번호가 줄줄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진짜, 내가 딱 그 번호들을 꿈에서 들었었는데…
물론, 문제는 제가 딱 한 번만 그 번호를 샀다는 것.
그 뒤로는 다시 사지 않았죠.
그때부터 생각합니다.
만약 그 번호를 매주 샀더라면?
지금쯤 발리 해변에서 이 글을 맥북으로 쓰고 있었을까요?
전산팀 형이랑 진짜 5:5 나눴을까요?
아니면, 그 형이 갑자기 잠수 탔을지도 모르죠. 하하.
지금은 로또 열풍도 많이 사그라졌고,
저도 그냥 기분 좋을 때 한두 장 사는 정도지만,
가끔 그 꿈을 떠올리면 묘하게 웃기고 또 아쉽습니다.
운이라는 건,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하고,
요행은… 정말 요행일 뿐입니다.
그 노인, 다시 한 번 나타나주면 안 될까요?
(작가의 말)
이 글을 쓰며 다시금 느꼈습니다.
로또처럼 가벼운 주제 속에도 인생의 아이러니와 선택의 무게가 숨어 있다는 걸요.
한순간의 선택이나 우연한 기회가
우리 삶을 얼마나 다르게 이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순간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아닐까요?
혹시 이 글을 읽고 나서,
당신도 오늘 로또 한 장 사게 된다면…
그건 또 다른 우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지만 웃음 나는 이야기,
여러분의 하루에 작은 행운이 깃들길 바라며.
– 우풍 정영일 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