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미소1

그 사람의 손끝에 깃든 온기

by 정 영 일

[선배의 미소 ①]

― 그 사람의 손끝에 깃든 온기


> 이 시리즈는 제가 이전에 써두었던 글입니다.

연재를 앞두고, 선배님께 조심히 말씀을 드렸고,

“한 번 써봐” 하시며 웃어주신 덕분에 글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그 시절의 온기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람의 향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 테니스 서클은 나에게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열정도 있었고, 우정도 있었고,

때로는 막연한 동경도 있었다.


그 동경의 중심엔 써클 선배이자, ROTC 1년 선배가 있었다.


언제나 단단한 목소리,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

모든 게 단정했고, 단단해 보였다.


군 시절엔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었지만,

전역 후, 그의 이름은 자주 소문 속에서 들려왔다.


“서울음반에 취직했대. 잘 나가더라.”

“노조위원장까지 됐대.”

“돈도 잘 벌고, 집도 사고, 차도 바꾸고…”


그 소문은 몇 해 뒤,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서클 모임에서 다시 만난 선배는

말끔한 양복 차림에 신형 그랜저를 몰고 도착했고,

밥값은 언제나 아무 말 없이 그의 몫이었다.


괜히 배가 불러도,

더 배부르게 느껴지는 그런 자리.


하지만,

가장 부러운 건 따로 있었다.


그의 아내가 우리 서클 동기였다는 사실.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눈빛은

‘함께 늙어간다’는 말의 조용한 증명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나 역시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될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선배의 또 다른 소식을 들었다.


서울음반을 퇴직했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연락을 해봤다.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


“나? 사업하고 있어. 잘 돼. 잘 지내냐?”


며칠 뒤, 선배는 클래식 CD 한 묶음을 내게 건넸다.


“태교엔 이게 최고야. 잘 들어봐.”


포장도 하지 않은 채 내민 그 손에는

여전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지만,

예전보다 조금 더 느긋하고, 조용한 눈빛이었다.


집에 돌아와 CD 플레이어를 틀었다.

낯선 피아노 선율이 방 안 가득 번져갔다.


아직 세상의 얼굴을 모르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그 음악을 들으며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날 선배가 내민 손끝에 깃든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성공의 자신감이었을까,

오랜 시간 끝에 얻은 여유였을까,

혹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조용한 회한이었을까.


그리고 그날 들었던 선율은,

지금도 가끔 귓가에 흐른다.


마치 선배의 목소리처럼.

“잘 지내냐?”


언제나 그 말 한마디로 시작되던,

따뜻한 인연처럼.


첫 편 감사합니다. 이어서 10시 두 번째 글 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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