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독백 – 시작과 불안 사이에서]
새벽녘, 창문 너머로
조용히 아침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늘 그렇듯, 이른 새벽이면
잠결에 일어나 나의 37년 지기, 담배와 마주한다.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시면
그 새벽빛이 마음속 깊은 곳을 조용히 적신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온다.
112일의 쉼을 지나
나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하지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걱정과 불안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돈다.
삶의 고단함 때문일까.
아니면,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막연한 부담감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 봐도 좀처럼 명확한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점점 약해지는 몸.
한때는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다 자부했던 내 육신이
이제는 '유지보수'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어딘가 삐걱거린다.
괜스레 서럽고,
스스로를 자책하게도 된다.
아내가 최근 지인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다섯 살 위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리를 못 쓰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을 더 넓게, 더 깊게 보는 지혜를 주는 동시에
육신의 쇠약함이라는 슬픔도 함께 데려온다.
그래서일까.
그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9월의 끝자락,
어느새 10월이 다가오고 있다.
매미 소리는 사라졌고,
새벽마다 먹이를 찾아 울던 이름 모를 작은 새들도
요즘은 조용하다.
그 작은 새가 오늘따라
유난히 부럽게 느껴진다.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 속에서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생존을 위해 하늘을 나는 단순함.
그 단순함이,
지금의 내겐 너무나 간절해 보인다.
사람은 충만함 속에 있을 때, 자신도, 주변도 잘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과 좌절이 스며들면
어느새 자신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오늘은 유독,
그 감정이 더 짙게 가슴에 내려앉는다.
벗이 말했다.
"절실함과 간절함은 결국 통하게 되어 있다"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 전에 필요한 건,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내면의 회복이다.
지금, 새벽.
모든 것이 고요한 이 시간에 나는 또 한 번
스스로와 마주하고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결심 하나가 조용히 움트고 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이른 새벽, 시작을 앞두고 흔들리는
저 자신에게 들려주는 조용한 고백입니다.
112일의 쉼 이후,
다시 걸음을 내딛으려는 지금, 그 앞에 선 불안과 두려움조차도
이제는 소중한 감정이라 여겨봅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체념도, 불안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더 깊은 나와 마주하고,
삶의 속도를 다시 조율해 나가는 또 다른 시작의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비슷한 새벽을 지나고 있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그 작은 새처럼
다시 한 번 날아봅시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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