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가르쳐준 얼굴

by 정 영 일

[아픔이 가르쳐준 얼굴]

몸이 아프면 문득 사람이 그리워진다고들 한다.

어쩌면 아픔 그 자체보다, 그 아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더 깊은 외로움으로 남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 말이 그저 익숙한 문장처럼 스쳐 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다가온다.


어제 이른 새벽, 영하 12도의 공기 속에서 출근길에 올랐다. 체감 온도는 숫자보다 더 낮게 느껴졌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하루를 시작했고, 하루를 버티듯 일을 마친 뒤에야 몸이 말을 걸어왔다. 열은 없었지만 목은 잠기고, 몸은 스스로를 낮추는 기척을 보였다.

두 달 넘게 현장을 오가며 별 탈 없이 지내던 몸이, 이제야 조심스럽게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아파보니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감정들이 있다.

건강할 때는 보이지 않던 마음의 결이, 몸이 약해지자 선명해진다.


“아플 때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인생에서 두 번째로 슬프고, 죽을 때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가장 슬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머문다.

‘생로병사’라는 단순한 네 글자가, 아플 때면 유난히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혼자가 되셨다.

곧 여든넷이 되는 나이. 아버지 소천 후 열 달이 지났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아직 그 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하다. 요즘 어머니는 잦은 병치레 속에서 “이제는 죽어야지”라는 말을 조용히, 그러나 자주 하신다.


음식은 몸에서 잘 받지 않고, 기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기운이 빠져나간 자리에 삶에 대한 의욕도 함께 비워진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보다, 하루를 견디는 일 자체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어머니의 말 속에는 죽음에 대한 결심보다는, 너무 오래 홀로 버텨온 시간의 피로가 담겨 있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둘 곁을 잃어가며 늙는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누구나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는다.

우리가 젊었을 때 찬란하게 빛나던 사람들조차 세월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익숙했던 얼굴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며, 죽음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순서임을 실감한다.

‘죽음과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다.


철학자 수전 손택은 병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병은 인간이 약해서 받는 벌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통과해야 하는 삶의 국면이라고.

그 말처럼 병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어머니의 쇠약해진 몸, 나의 잠긴 목소리, 새벽의 공기 속에서 느꼈던 그 쓸쓸함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결국 혼자 태어나 혼자 떠나지만, 그 사이의 시간만큼은 서로의 곁에 머무를 수는 없는가 하고.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누군가 곁에 있다는 확신일 것이다. 말없이 함께 앉아 있는 시간, 안부를 묻는 목소리, 그저 오늘을 함께 건너고 있다는 느낌.


아픔은 삶을 약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삶의 본질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머니를 떠올린다.

언젠가 이별이 오더라도, 적어도 외로움 속에서 맞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바람은, 어쩌면 어머니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건네는 기도일지도 모른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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