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날, 따뜻해지는 기억

by 정 영 일

[추운 겨울 날, 따뜻해지는 기억]

오늘은 유난히 춥다.

영하 12도.

숫자보다 더 차갑게 몸에 와닿는 하루다.

체감은 영하 20도쯤 되는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는 일마저 잠시 망설여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고.

하지만 오늘의 겨울은

조금 지나치게 겨울답다.


사람마다 계절을 대하는 마음은 다르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한낮의 열기로 가득한 여름을

더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제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

젊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떠올려 보면 그렇다.


젊었을 때의 겨울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혼자 차를 몰고

용평리조트로 스키를 배우러 갔던 날이 있다.

리프트권 하나 끊어 두고

유료 강습을 받는 사람들 옆에서 슬며시 곁눈질로 동작을 익혔다.


돈이 아까웠다는 게

가장 솔직한 이유였다.


그렇게 배운 스키로

중급 코스를 내려오던 순간의 스릴은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숙소비도 아끼겠다고

차 안에서 외투를 입은 채

밤을 보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그마저도

젊음이 허락한 모험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의 겨울은

몸으로 버텼다.

지금의 겨울은

마음으로 견딘다.


겨울이 오면

곰도, 다람쥐도

겨울잠에 든다고 한다.

추위를 견딘다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처럼 유난히 추운 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출근하다 보니

사람들의 옷차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툼한 외투와

목도리, 장갑.


그 모습들만 봐도

이 계절이 얼마나 매서운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회사에 도착해

1층 커피숍에 들렀다.

3,900원짜리 핫커피 한 잔.


컵에서 올라오는 김이

얼굴에 닿고,

손과 발에 온기가 스며들자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풀린다.


그제야 알겠다.

겨울은

그저 견뎌야 할 계절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철학자는

겨울을

‘삶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라 말했다.

겉으로는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

젊음의 겨울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절이었고,

지금의 겨울은

잠시 멈춰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앞에서

젊은 날의 나를 떠올리고,

지금의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마도 겨울이란

추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추위를 건너며

자신의 속도를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렇게,

겨울 한가운데서

조용히 나를 데운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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