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이라는 이름의 인연

-필자의 고백 32

by 정 영 일

[귀인이라는 이름의 인연]

살아오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내 인생에도 귀인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을까 하고.


우리는 흔히 귀인을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결정적인 순간 도움을 준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다.

귀인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귀인은 늘 따뜻한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

때로는 가장 불편한 말로,

가장 외면하고 싶던 진실로 다가온다.

그 순간에는 상처처럼 남았던 말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를 앞으로 밀어준 방향이었음을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나를 가장 크게 바꾼 순간들은

누군가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게 해준 한 사람,

혹은 한 문장, 한 장면이 있었다.


문득,

삼 년 전 청평의 작은 사우나가 떠오른다.

프론트에서 일하시던 중년의 여성분.

짧은 대화 속에서도

“글을 써보라”는 말을 여러 번 건네주던 그분의 얼굴.

그때는 가벼운 인사처럼 흘려들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이

내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또 있다.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설계사의 길을 걸어보라며 등을 떠밀어준 두 벗.

지금도 여전히

“할 수 있다”는 말을 가장 먼저 건네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

나는 쉽게 주저앉지 않는다.


그들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았다.

다만

내가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귀인은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때로는 원망스럽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상하게도 귀인은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보다

흔들릴 때 나타난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를 의심할 때,

“그래도 너는 가야 한다”라고

말없이 등을 밀어주는 존재로.


그때는 몰랐다.

그 인연이 귀인인지조차.

그저 스쳐가는 사람이라 여겼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예전과 같은 방향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귀인은

감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책임의 대상이다.

그들이 열어준 문 앞에서

멈출 것인지,

한 걸음 더 들어설 것인지는

결국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귀인이 있었는지를 묻기보다

나는 그 인연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어쩌면 귀인은 이미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직

나의 마음가짐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귀인은 기적처럼 인생을 바꿔주지 않는다.

대신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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