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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팅 앱 사용자 Aug 28. 2024

이탈리아 도착

편지 1. 8월 29일

언니에게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야. 지금은 기숙사에 혼자 있어. 기숙사는 노란색 하얀색 이케아 가구와 파란 인조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뭔가 인형의 집 같기도 한데, 여름에도 꽤 시원해. 룸메이트는 당일치기 여행을 갔어. 아직 룸메와 어색해서 그런지 혼자 있는 게 편해. 내 룸메 이름은 줄리아나이고 나보다 1살 많은 브라질 여자애야. 스펠링은 다르지만 애칭은 언니처럼 주(Ju)야. 내가 이탈리아에 도착한 다음 날 주가 나에게 이탈리아를 소개하여주겠다고 해서 여기저기 같이 다녔어. 주 덕분에 피렌체의 주요 관광지를 속성으로 배우게 되었지.



음식은 샌드위치나 파스타 만들어 먹어. 한국에서도 기숙사 생활을 한 적이 있지만 그땐 부엌이 없어서 다 사 먹었었는데, 여긴 물가도 비싸고 부엌도 있고 무엇보다 아직 학교 학생 식당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만들어 먹고 있어. 근데 조리 기기가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전기레인지라 물 끓는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려. 그래서 배고플 때 파스타면 삶기 귀찮을 거 같아서 미리 조리된 면 사봤는데 웩, 정말 맛이 없더라. 앞으로는 그냥 좀 오래 걸려도 삶아 먹어야겠어.



이것저것 식재료 사는데 생각해 보니까 난 한 번도 혼자 장을 본 적이 없더라. 그래서 음식을 어느 정도 사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안 와. 과자나 과일은 어느 정도 사야 할까? 슈퍼가 늦게까지 열지 않고 주말엔 닫아서 더 고민돼. 이탈리아엔 편의점이 없어서 새벽에 출출해도 뭘 사 먹을 곳이 없어. 그래서 엄청 고민하면서 음식을 카트에 넣었다 뺐다 계속 반복했어. 새삼 내가 섭식장애를 다 고치고 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작년 여름에 완치했었는데, 벌써 일 년이나 지났네. 만약에 섭식장애를 이탈리아까지 안고 왔다면 난 마트에서 사 온 음식으로 폭식하고 늘어난 위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했겠지? 그랬다면 이탈리아에서 한학기도 못 버티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거야. 여러모로 시작이 좋은 거 같아 마음이 놓여. 잘 지내고 한가할 때 답장 줘.



-은경이가

P.S 

여기 햇빛이 정말 엄청 강해서 빛의 촉감이 느껴질 정도야. 햇빛 아래 있으면 피부가 뜨거운 빗으로 콕콕 찔리는 거 같아. 스프레이 선크림을 사서 바르는데도 몸이 벌써 까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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