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낳았다는 이유로
아직 작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혹은 아이를 키우며 생긴 내 주관적인 판단들로 인해 아이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딸인데도
부모의 눈엔 늘 부족함이 먼저 보이는 건 왜일까.
아침잠이 많고, 게으르며, 끈기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면
아이는 밝고 긍정적이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약자를 도울 줄 아는 아이였다.
사랑스럽고 예쁜 면이 참 많은 아이인데도
나는 자꾸 단점만 크게 보는 것 같다.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것을 더 크게 기억한다는데
어쩌면 그래서일까.
아이를 믿지 못하는 나의 약함을 괜히
뇌 탓으로 돌려본다.
딸이 꾸준하지 못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나는
어느 날 아이에게 한 프로젝트를 알려줬다.
한 달 동안 하루에 하나씩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이 메일로 오고
그 답을 쓰면 책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일정 금액을 내면 아이가 쓴 글을 예쁜 책으로
인쇄해주는 방식이었다.
사춘기를 겪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설명을 들은 아이는
생각보다 진지하게 “해보겠다”고 말했다.
기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격려보다 의심을 먼저 건넸다.
“시작하고 나서 밀리거나 중간에 포기하면 안 돼.
진짜 할 거야? 할 수 있겠어?”
여러 번 되물었다.
결국 제안을 해놓고도 아이를 믿어주지 못한 채,
진짜 할 수 있겠냐고 따져 묻고 만 것이다.
생각해봐도 참 못난 모습이었다.
그럼 어떻게 됐을까?
아이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메일로 오는 질문에 정성껏 답을 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찾아갔다. 정말 멋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감정이 앞서 서로를 아프게 하기도 하고
싸우는 날도 많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가 마음먹은 일에 대해 분명한 책임감을 갖고 임했고 결국 해냈다.그리고 아이가 써 내려간 글은 또 한 번 나를 돌아보게 했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지금 당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나요?”였다.
그 질문에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는 요즘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어깨가 무거운 진로 고민도 해야 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들도 풀어야 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도 나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현실보단, 재미있고 아무 걱정도 안 해도 되는
휴대폰에 빠져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려고
해야지 하면서도 돌고 돌아 휴대폰을 붙들고
침대로 향하는 게 요즘 나의 모습이다.
계속해서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 우울함,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을
없애려면 생각만 하는 것을 행동으로 부지런히
바꿔야 하는데 자꾸만 게으르게 행동하게 돼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무조건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노력하다 보니 예전에 비해 하루 동안
한 일들이 많아 지고있다. [... ]
이 책이 끝났을 때는 나한테 자랑스러운 내가 되길.
내가 매일같이 했던 잔소리
“휴대폰 좀 그만 봐라.”
그 말은, 사실 아이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괴로운 아이에게 나는 괴로움을
더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나의 인격체로서,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아이.
그걸 왜 나는 늘 잊고 있었을까.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나는 그 삶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고 함부로 말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아이는 자라고 있다.
내 눈보다 더 빠르게, 내가 준 신뢰보다 더 단단하게.
그러니 이제, 나만 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