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이 재개봉했다. 2021년 재개봉 이후 4년 만이다. 오는 1월 25일 개봉하는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으로 인해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도 재개봉하게 됐다. 재개봉 작품으로 3부작 중 한 편만을, 게다가 시작도 끝도 아닌 가운데에 걸친 작품을 택한 이유는 이번 신작이 ‘로히림’의 전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3편 모두 재개봉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내려놓는다면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재개봉은 행복한 일이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제목 속 ‘두 개의 탑’은 무엇을 의미할까.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는 두 개의 탑이 어떤 탑을 가리키는지 불명확하며, 톨킨도 해석을 유보했다. 독자들에게 두 개의 탑이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 해석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피터 잭슨 감독은 두 개의 탑을 모르도르의 바랏두르와 아이센가드의 오르상크로 해석했다. 즉, 영화 속 ‘두 개의 탑’은 바랏두르와 오르상크, 두 개의 탑의 동맹을 의미한다. 거대한 악 사우론이 뛰어난 마법사라고 불렸던 사루만의 능력을 얻었으니, 이들의 동맹은 아주 무시무시하면서도 선을 좌절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이 동맹은 힘이 없다. 영화 속 사루만은 사우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 속 사실 사루만은 사우론보다 먼저 절대반지를 얻고자 했다. 겉으로는 동맹 관계지만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루만이 무너질 때 사우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악의 동맹은 원래 쉽게 깨지는 법이다.
반면 선의 동맹은 다르다. 영화 중반부 로한을 돕기 위해 엘론드가 보낸 엘프 동맹군이 도착한다. 엘프(요정)들은 별 문제가 없다면 영생을 살 수 있는 존재다. 이들이 자신의 평온을 깨고 로한을 도우러 온 것은 목숨을 내거는 행위나 다름없다.
이들의 선택은 인간과 요정이 오랫동안 교류했기 때문이라는 의리의 차원에서가 아니다. 이들이 목숨을 내걸면서까지 인간을 돕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로한의 인간들과 자신들이 무관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요정들이 영생의 땅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패배하고 사우론이 승리했을 때, 사우론이 지배하게 될 세상이 요정들과 무관할 수는 없다.
서로가 서로의 책임감을 공유하는 모습은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엔트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리자 상심한 메리에게 피핀은 우리에게는 고향 샤이어가 있다고 위로한다. 하지만 메리는 이 전쟁이 계속되면 샤이어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말한다. 나에게 소중한 고향이 있는 것처럼, 지금 눈앞에서 전쟁을 겪는 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 있고 그들은 그걸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힘은 악의 동맹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다.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은 그들의 고통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