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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의 은밀한 이중생활

<도학위룡> 시리즈

by 일영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총 세 편을 개봉한 <도학위룡> 시리즈는 주성치의 필모그래피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다. 진가상 감독의 <도학위룡(1991)> <도학위룡 2: 첩혈위룡(1992)>으로, 그리고 왕정 감독의 <도학위룡 3: 용과계년(1993)>으로 이어지는 <도학위룡> 시리즈는 주성치가 잠입 경찰로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다. 1편과 2편까지는 학교라는 배경을 유지하지만, <도학위룡 3: 용과계년>에서는 학교라는 설정은 쏙 빠지고 <원초적 본능(1992)>을 패러디한다.


©영화 <도학위룡 2: 첩혈위룡>

잠입 경찰이라는 소재는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잠입 경찰은 이제 소재를 넘어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언더커버* 장르는 정체를 숨기고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부여하는 서스펜스, 의심하고 의심받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심리전을 강조한다. 경찰 등 기존 신분과 위장 신분 사이에서 역할 갈등을 겪게 되면서 인물이 고뇌하는 것 또한 재미를 더한다. 이 때문에 잠입 경찰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무수히 많다. 홍콩 영화에도 마찬가지다. 잠입 경찰 이야기가 누아르 장르로 만들어지면 <무간도> 시리즈에 가깝겠지만, 주성치식 코미디로 만들어지면 <도학위룡>이 된다.


<도학위룡>에서 주성치는 경찰국장이 잃어버린 (선량한) 총을 찾기 위해 학교에 잠입한다. 그런데 잠입을 위해 부여받은 위장 신분이 교사도, 관리자도 아닌 학생이다. 팔자에도 없는 공부와 숙제를 떠안게 된 주성치가 학교에서 졸다 칠판지우개로 얻어맞고, 숙제를 하지 않아 벌을 서는 장면은 웃기지만 슬픈 상황이다. 숙제도 안 해 오고 선생님 말도 안 듣는 반항아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경찰과 학생 사이 역할 갈등을 겪고 있을 뿐이다.


©영화 <도학위룡>

주성치는每週一星’이라고 적힌 큰 이름표를 목에 걸고 학교 운동장에 박제되기도 한다. 이번 주 가장 나쁜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는 주성치는 마치 중세 시대 형벌을 받는 죄수 같다. 매번 학교에서 혼나기만 하고 수사는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 와중에도 로맨스는 잊지 않는다. 학교에서 만난 상담 선생님 장민을 좋아하게 된다.


시험에서 컨닝을 하다 걸려 혼쭐나기도 하고, 오맹달과 가짜 부자(父子) 연기를 하기도 하며(교사가 둘의 성씨가 다른 것을 지적하자 “태어날 때는 조성성이라고 지었는데 왜 주성성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는 것이 이 장면의 재미다), 경찰이라는 정체를 발각당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주성치는 사건을 해결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성치도 성장한다. 영화 초반부,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대원들이 죽든 살든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인질만 구하는 데 급급했던 성과지향적이고 독선적인 인물이, 아이들과 어울리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팀워크를 배우게 된다. 동시에 장민과의 사랑도 이루는 해피엔딩이다.


©영화 <도학위룡 2: 첩혈위룡>

<도학위룡 2: 첩혈위룡>에서는 주성치가 테러범을 잡기 위해 학교에 간다. <도학위룡>에서 주변 격 인물에 불과했던 학생들이 주성치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몰려다니는 설정 탓인지 어딘가 조잡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성치가 학교로 가기까지의 전개와 상황 설명이 긴 탓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1편에서 주성치와 연인이 장민은 <도학위룡: 첩협위룡>의 주변 격 인물이 된다. 그리고 주성치에게 새로운 여자가 나타난다. 바로 주인이다. 주성치는 주인이 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접근하고, 주인은 주성치에게 반한다. 주성치도 열심히 사심을 채운다. 주성치와 토끼 같은 주인이 손을 꼭 잡고 학교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커플이다.


역할 갈등으로 인한 고뇌는 여기서도 일어난다. 경찰과 학생 사이의 역할 갈등보다는 두 여자 사이 양다리로 인한 고뇌다. 학교에서 주인과 함께 장민을 만나게 된 주성치는 바트 심슨 가면을 쓰고 아닌 척해 보지만 결국 장민에게 들통나고 “결혼하지 말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영화 <도학위룡 2: 첩혈위룡>

주성치가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에도 시간은 잘 간다. 테러범은 본격적으로 테러를 준비하여 실행하고 학교는 위기에 빠진다. 물론 주성치는 언제나 주성치 영화스러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도학위룡> 시리즈의 주성치는 학교에 있을 때는 영락없는 푼수지만 경찰로 작전을 수행할 때 프로페셔널해지는 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도학위룡>보다 더 화려해진 총격전을 보여 주는 <도학위룡 2: 첩혈위룡>은 주성치가 무사히 작전을 완수하고 장민 곁으로 돌아가면서 막을 내린다.


©영화 <도학위룡 3: 용과계년>

<도학위룡 3: 용과계년>에서 주성치는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르지 않는다. 도학(學)위룡인데 학교라는 소재는 빠지고 잠입 경찰이라는 소재만 남았다. 전편에서 주성치의 애인으로 등장했던 장민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등,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분명히 매력은 있다. <도학위룡 3: 용과계년>의 주성치에서는 풋풋함보다는 원숙함이 더 느껴진다. 이제 학생보다는 어른 남성 같다.


주성치가 <원초적 본능>에서 사건을 수사하다 붕괴되는 마이클 더글라스라면 매염방은 샤론 스톤이다. 샤론 스톤이 살인 사건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처럼 매염방도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그런데 이 죽은 남자가 턱 밑에 난 점 빼고는 주성치와 똑같이 생겼다. 원치 않게 언더커버 역할을 또 떠맡게 된 주성치는 (살아 돌아온) 매염방의 남편으로 위장하여 매염방에게 접근한다.


©영화 <도학위룡 3: 용과계년>

매염방과 시간을 보낼수록 주성치는 매염방이 남편을 몹시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매염방을 의심하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관객은 매염방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순수한 진심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묘사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옷을 입고 주성치와 (강요에 가까운) 역할극을 하는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다.


<도학위룡 3: 용과계년>의 퀴어적 요소도 눈에 띈다. 장민이 만나는 남자는 남장한 매염방이다. 장민과 매염방이 함께 춤을 추는 시퀀스에서 어쩌면 매염방이 젠더적 경계를 흐리게 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매염방과 메인 빌런(여성) 사이의 관계 역시 단순한 우정의 감정을 뛰어넘는 무언가다.


매염방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진정한 남성이 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주성치를) 만나면서 다시 여자가 되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장면이지만, 이러한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90년대 영화가 매염방 캐릭터를 꽤나 진지한 태도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도학위룡 3: 용과계년>은 매염방이라는 배우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넘나들 수 있는 오묘한 매력을 백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도학위룡 3: 용과계년>

주성치와 관객이 매염방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주성치의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코미디 속에서 정극 연기를 하는 주성치를 발견할 때마다 주성치라는 배우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주성치는 유리문에 얼굴을 있는 힘껏 찌그러뜨린 채로 등장하지만, 진지함을 웃음으로 틀어 버리는 것까지가 주성치 영화의 완성일 것이다.


*언더커버(undercover): 위장 잠입해 비밀리에 첩보 활동을 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수사나 첩보 장르에서 많이 활용되는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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