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여자
아침은 언제나 두 마리의 개와 함께 시작된다.
테라스에 앉아 녀석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요즘 내 삶에서 가장 확실한 기쁨이다.
모델을 정식으로 스카웃해서 채용했다.
직함은 ‘비서 겸 운전기사’, 계약금 1억에 연봉 1억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술친구다.
“의사 딸하고 술을 마시겠냐?”
딸은 술 한 모금도 못 마신다.
모델은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프론트에서 고객에게 미모자랑하는 식이다.
얼굴하나만으로도 그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직원이다.
차로 10분 거리라, 직접 운전해 출근한다.
고객들과 인사를 나누면,
싸인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상희가 운영한다더라.”
그 소문이 돌기 시작한 3월부터, 예약은 풀로 차기 시작했다.
나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일 줄은 미쳐 몰랐다.
열 시가 되면, 모델과 나는 아줌마 프로에게 골프 레슨을 받는다.
예전에도 몇 번 배워본 적은 있지만,
이번엔 목표가 다르다. 80대 중반 스코어이다.
모델도 예전에 골프를 쳤다고 했다.
나보다 조금 더 잘 친다.
산속에서의 삶이 내게는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골프장도, 집도, 마을도 모두 내 마음에 든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모델과 강원도로 ‘놀러간다.’
아니,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힐링 여행’이다.
목적지는 강원도 카지노이다.
힐링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벼운 옷차림이다. 하얀 스판 쫄바지를 입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가씨들처럼 몸매는 된다.
차 안에서 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도착이네.
며칠 피곤했던 탓일 것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카지노로 내려갔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반 베팅 한도는 30만원이다.
유흥비만 벌고 나가리라.
시계는 저녁 7시 30분이다.
모델에게 말했다.
“내가 가는 대로 따라와. 금액도 똑같이.”
"네 언니"
뱅커 30만 승, 또 30만 승, 플레이어 30만 승.
둘이 합쳐서 단 세 판 만에 180만 원을 따냈다.
다음 판, 카드의 뒷면이 살짝 보였다.
신이 주신 초능력이다.
플레이어와 뱅커 같은 숫자였다.
둘 다 양쪽에 30만 원씩 걸었다.
같은 숫자가 나오면 11배.
각자 690만 원. 합이 1,380만원이다.
나는 현금으로 환전 후, 모델에게
“혼자 좀 놀고 있어라.”
하고 흡연실로 향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깊게 들이마신 그 순간,
창가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긴 생머리, 차가운 눈빛.
미니스커트에 체크무늬 셔츠, 소박한 악세사리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오늘 게임 잘 안되셨어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 이놈의 카지노 폭파시키고 싶네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오백 날렸어요.”
“그 돈 따게 해드리면 술 한잔 하실래요?”
“당연하죠.”
그녀를 모델이 있는 바카라 테이블로 데려갔다.
“그냥 내가 하는 대로 해요.”
열 판쯤 지나자,
각자 500만 원씩 이겼다.
“내가 그만하죠. 이긴 돈으로 술이나 마셔요.”
카지노를 나와 생맥주 한잔 들이켰을 때,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호텔 앞 바에 들어갔다.
손님이 드물었다.
대부분 카지노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셋이 앉아 양주잔을 부딪쳤다.
명함을 내밀자 여자가 물었다.
“골프장 사장님이시네요?”
그녀가 자신을 소개했다.
“33살이에요. 라이브 가수였어요.
두 달 전까진 강남에서 카페 운영했는데,
그 전엔 댄스스포츠 프로선수였읍니다.
이혼하고 위자료로 가게 차렸는데,
카지노에서 한 달 만에 3억을 잃었어요.”
나는 잔을 들며 말했다.
“그 3억, 내가 다시 벌게 해주면 내 밑에서 일할래요?”
그녀의 눈이 번쩍였다.
“진짜요?”
옆의 모델이 웃으며 말했다.
“언니 거짓말 안 해요.”
밤 10시 30분이다.
우리는 술값을 맡겨두고 다시 카지노로 향했다.
이번엔 VIP룸이다.
베팅 상한가, 300만 원이다.
가운데 앉은 나, 양옆의 두 여자이다.
나는 칩을 나누어 주며 말했다.
“자, 시작하자.”
두 번째 판까지 뱅커 승.
세 번째 판은 무승부.
무승부는 배당 8배이다. 각자 2400만원씩 승이다.
단 30분 만에 셋이 번 돈이 각자 1억이 넘었다.
환전소에서 3억을 환전해
그녀의 통장으로 입금했다.
가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모델도 비슷했다.
나는 잔을 들고 웃었다.
“지금부터 너는 내 직원이야.”
“네, 언니.”
“카지노엔 나랑 올 때만 와. 혼자 오지 마.”
“네, 그럴게요.”
숙소가 카지노 호텔이라기에 말했다.
“비싼 데 잡았네.
이따가 우리 방에서 한잔 더 하고 자자.”
“네, 언니.”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시고 셋이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콩나물국으로 해장을 한 뒤,
양떼목장으로 향했다.
가수의 얼굴이 햇살 아래 더욱 투명했다.
“너 성형했니?”
“아니요, 원래 피부가 좋아요.”
“애는?”
“남편이 데리고 갔어요.
지금은 강남에 혼자 살아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서울 가면, 기본적인 것만 챙기고
우리 집으로 와서 살아라.”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골프는 칠 줄 알아?”
“네,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잘됐네. 여기선 공짜니까 마음껏 쳐라.”
두 여자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풀렸다.
양떼목장 주차장에 도착해 셋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녹아드는 오후였다.
아이스크림의 달콤함보다
서로의 그림자가 나란히 길게 늘어져 있는 그 풍경이,
왠지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입장권을 사고 양 먹이를 사서 들고 오르막길을 걸었다.
눈앞에 펼쳐진 초원은 말 그대로 ‘대자연’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녹색 물결 위로 하얀 양들이 부유하듯 흩어져 있었다.
그 평화로운 풍경에, 잠시 모든 시름이 가라앉았다.
멀리엔 말도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는 웃으며 사진을 찍고,
5시가 조금 넘어 근처의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 건물은 완전히 일본풍이었다.
문 앞에 차를 세우자 세 사람 모두 동시에 감탄했다.
“야, 여기서 자자. 너무 좋다.”
나는 가장 큰 온천방이 딸린 숙소를 잡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그런지, 손님은 거의 없었다.
샤워실 거울 속에 비친 세 여자의 모습이 신의작품처럼 예술이이다.
어쩐지 묘했다.
서로 다른 인생의 굴곡을 가진 여자 셋이,
마치 한 장의 수묵화 속에서 조용히 서 있는 듯했다.
나 역시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아 아직 50kg을 유지하지만,
세월은 얼굴의 흔적까지는 덮어주지 않는다.
‘여자가 너무 예쁘면 팔자가 사납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말은 어쩐지,
내 이야기 같았다.
가운을 걸치고 온천 앞으로 나서자,
김이 피어오르는 수면 위로
달빛이 은빛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셋이 나란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피로가 녹아내리듯 마음이 느슨해졌다.
“여기, 천국 같아요.”
가수가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만큼은 그렇게 믿자.”
30분쯤 지났을 때, 일본인 마사지사가 들어왔다.
작은 체구의 그녀들은 섬세했다.
피부 위를 흘러내리는 손끝은
근육보다, 마음을 먼저 풀어주는 듯했다.
혈자리를 짚는 그 리듬에
나도 모르게 졸음이 밀려왔다.
2시간 후,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몸은 가볍고, 마음은 허공처럼 떠 있었다.
“고기 먹으러 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했다.
온천 앞 골목의 소고기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주에서도 이런 해방감은 못 느꼈는데.’
생고기와 갈비살, 그리고 사케 한 잔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이다.
어제 과음했지만,
오늘의 술은 이상하게 부드럽게 목을 탔다.
나는 가수에게 한입, 모델에게 한입,
정성스레 고기를 싸서 건넸다.
그 작은 행동 속에,
이상할 만큼 따뜻한 정이 스며 있었다.
밤 11시, 피로가 밀려왔다.
숙소에 돌아와 불을 끄자,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 6시, 다시 온천에 들러 샤워를 했다.
김이 피어오르는 수면 위로 새벽빛이 번졌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 따뜻한 물에 몸을 맡겼다.
8시, 콩나물국으로 해장을 하고
근처 계곡의 카페로 향했다.
물소리와 커피 향이 섞여
묘한 평화를 만들어냈다.
그 후, 가수를 카지노 주차장으로 데려다주었다.
“저녁엔 우리 집으로 와.”
"네 언니"
그렇게 말하고 서울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개들이 달려왔다.
털이 부드럽게 손끝에 닿는다.
그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저녁에는 모델과 라면을 끓였다.
라면 두 그릇, 소주 한 병.
그 단출한 식탁이 왠지 가장 편했다.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카락 끝에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비 오니까 더 좋네요.”
세여자는 라면에 소주 한 잔씩을 나눴다.
빗소리와 젓가락 소리가 교차하는 그 순간,
세 여인의 또 다른 밤이
고요하고 조용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빗소리가 더 거세졌다.
모델은 아침출근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둘이만 남았다.
가수가 말을했다.
상희언니가 수렁에 빠진 저를 건져주었읍니다.
나를 사랑스럽게 다정하게 않아 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꼬옥 않아 주었다.
알수 없는 낯선여자의 머리카락의 삼퓨냄새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