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28살 그날의 빗소리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랑 2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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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해서 10시에 집에 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일주일 동안 내 몸을 너무 혹사시킨 탓이다.
남자를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온몸이 쑤시고, 안 쓰던 근육들이 죄다 비명을 질렀다.



역기를 들고 달리기를 하는, 단련된 몸이다.
국가대표급 체력을 가진 남자였다.
그 앞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시골 여인일 뿐이었다.
그의 품에 안길 때마다,

내 몸이 천 조각, 아니 만 조각으로 찢어지는 듯했다.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늘 같은 장면들이다.


밭에서 일하는 모습, 본채 뒤에서 역기를 드는 모습,
그리고 오후의 햇살 속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다.



그런 남자를 보고 빠져들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4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뒤져봤지만 마땅한 게 없어
차를 몰고 마을 식당에 가서 백반을 주문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모델과 가수가 들어와 막걸리를 시켰다.


“언니, 일주일 사이에 살이 빠졌네요.”
모델이 웃으며 말했다.
가수가 덧붙였다.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네요.”



셋은 그 말에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밤마다 절에서 자고 새벽에 돌아왔다.
그는 매일 내 귀에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 사랑은 달콤했고, 동시에 중독적이었다.
아직까지는 돈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일요일이면 절에 신도들이 오기에,
그는 월요일마다 속리산의 부모님댁에 같이 다녀왔다.


그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그의 딸도 한 번 보았다. 예쁜 아이였다.



용돈을 주고, 매일같이 사랑을 주었다.
함께 밭에서 일할 때면 세상이 다 행복으로 가득 찬 듯했다.



‘이게 꿈이라면, 제발 깨고 싶지 않다.’



딸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던 일상도 멈췄다.
그와의 동거 아닌 동거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의 몸이 떠올랐다.
보통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문신과 자국들이다.



그날 저녁, 모델과 가수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요… 남자 교도소에서 하는 인테리어라고 하던데요.”
가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통… 징역 다녀온 사람들이 한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두 여인은 내 눈치를 보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 징역을 다녀왔다 해도 과거일 뿐이야.
지금은 새사람이 된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날 밤도 절에서 자고 왔다.
눈을 감으면 그 남자가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애써 넘겼다.
하지만 카드 현금 서비스가 늘어갔다.
처음엔 300만 원, 다음엔 800만 원이다.
‘필요한 걸 사겠지.’ 그렇게 또 그냥 넘겼다.



그는 월요일마다 속리산에 간다고 했지만,
이젠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의심이 들 때마다, 그가 나를 안아주면
모든 의심이 녹아내렸다.



나는 쇠사슬에 묶인 노예처럼 그의 품에 길들여졌다.
그는 나의 주인이었다.

“천만 원만 해줘.”
그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계좌이체를 했다.



그는 마치 성난 짐승처럼 나를 안아주었다.
그럴 때마다 내 의심은 사라졌다.
그렇게 빠져나간 돈이 1억이 넘었다.



하루는 테라스에 앉아 문득 생각했다.
‘스님이 1억을 어디에 쓰지? 옷도 절복뿐이고,
먹는 건 내가 다 해주는데….’

그날, 절에 들어가 그의 의료보험 카드를 발견했다.



사진을 찍어 경찰서로 향했다.
친분 있는 경찰에게 신원 조회를 부탁했다.
잠시 후, 경찰이 말했다.

“드릴 순 없지만… 보고만 가십시오.”
종이에 적힌 한 줄이 눈에 박혔다.



‘사기 전과 5범.’

주소지는 15년 전부터 절로 되어 있었고,
가족은 부모뿐, 자식은 없었다.



최근 10년간 두 번의 수감과 마지막 출소는 2년전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날 오후 5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고 싶어. 오라고 한다.”
피곤하다고 거절했지만, 그는 계속 말했다.
“ 제발. 보고싶어”



결국 나는 또 그의 품으로 갔다.

빠져 나올수 없는 중독이 되어 버렸다.
그는 내게 사랑을 속삭였다.
마약 주사를 맞은 듯, 정신이 아득했다.


“1억만 더 해줄 수 있냐.”
이번엔 단호히 거절했다.
골프장 운영이 어렵다고 거절했지만.....
그날 밤, 그는 나를 불처럼 사랑해주었다.


거절할 수 없었다.
다음 날, 1억을 입금했다.


집으로 저녁에 돌아와서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머리가 멍했다.

내가 나를 생각해도 도깨비인지, 귀신인지 홀려서 정신이 없다.


샤워를 마친 후, 나는 모델과 가수를 불렀다.
“서울 심부름센터 찾아서, 스님 좀 미행시켜봐라.”

"네 언니"



다음날 가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지금 미행 붙였습니다.”

오전에, 그가 일보러 나갔다며 전화가 와다.
점심쯤 중간 보고가 왔다.


심부름센타는 직접 나에게 중간결과를 보고했다.

“지금 경기도쪽 도박장 들어갔습니다.
사복 입고요. 감방 동기가 운영하는 곳이에요.”
“감방 동기요?”
“네. 거기서 돈 많은 골프장 과부사장 공사친다고 말했습니다.”
“공사친다는 게 뭐야?”
“작업 걸어서 돈 빼낸다는 뜻이에요.”



나는 이가 갈렸다.
‘감히 나를 공사쳤다고?’
분노로 손이 떨렸다.

그날 밤 절로 갔다.



그는 평소처럼 나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나 당신 골프장에 취직할까?
매일 보고 싶어서 그래.”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를 원했고, 그 밤은 다시 뜨거웠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결심이 굳어지고 있었다.



‘이놈을 어떻게 할까.’



그와 남은 여생을 함께할 생각도 했다.
혼인신고는 못 해도, 그가 준 행복만큼은 보상해주고 싶었다.
죽은 핸드폰 오빠 이후, 처음으로 뜨겁게 사랑한 남자였다.



하지만 며칠 뒤, 심부름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여자 두 명이 스님 고소 준비 중입니다.
차용증 쓰고 1억씩 빌려간 모양이에요.”



며칠 후,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소장이 접수됐습니다. 피해자는 이 동네 여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흘러갔다.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여자 사랑해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걸 내준 내 지난날이
그저 먼 꿈처럼 느껴진다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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