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위의 소년〉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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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미터 위, 절벽 기둥처럼 솟아오른 산 위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산꼭대기라기보다, 거대한 돌기둥의 꼭대기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넓이는 대략 천 평 남짓.

작은 숲과 흙, 바위, 몇 그루의 나무, 그리고 오래된 움막 하나.

소년은 그곳에서 태어나, 열두 해를 넘겼다.



그곳은 누구도 오를 수 없는 땅이었다.

사방은 수직의 낭떠러지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구름 사이로 숲이 까마득히 펼쳐졌다.



올라온 자도, 내려간 자도 없었다.

그 작은 평원에선 하늘만 가깝고, 세상은 아득히 멀었다.



소년은 처음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어딘가로부터 이곳에 도달했다.

도망치듯 올라왔고, 숨듯이 정착했다.



왜, 어떻게, 언제… 소년은 모른다.



다만 그들의 말수가 적었고,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자주 침묵 속에 머물렀다는 것만 기억난다.



어머니는 어느날 병으로 쓰러졌다.


소년은 그날, 아버지가 울고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버지는 불을 피우지 않았고, 나무를 자르지도 않았다.

몇 날 며칠, 움막의 문은 닫혀 있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두 해 뒤, 아버지 역시 쇠약해졌다.




마지막 밤, 아버지는 기침으로 밤을 지새우다,

새벽녘 떨리는 손가락으로 동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스무 날을 걸어가면… 사람들이 살아…”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을 꽉 깨물었고,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작은 나무함에 아버지를 눕히고, 땅을 팠다.


흙과 바위틈 사이로 깊이 아버지를 뭍었다.

**

소년은 혼자가 되었다.

세상에는 아무도 없고, 시간도 흐르지 않는 것 같은 곳에서.

첫 새벽은 무서웠고, 첫 저녁은 눈물 났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기만 해도 움막 벽에 등을 붙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침묵은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혼자라는 사실은 현실이었고, 외로움은 공기처럼 익숙해졌다.




그는 살아야 했다.

빗물을 받고, 연못을 청소했다. 불을 피우고, 나뭇가지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텃밭을 다시 갈고, 사슴이 밟고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 풀을 베었다.



하루하루는 천천히 흘렀고, 소년의 눈동자에는 점점 짙은 고요가 스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위 아래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작은 둥지처럼 움푹 파인 틈에서 새끼 독수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깃털도 자라지 않은 어린 새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떨고 있었다.

소년은 그 새를 품에 안고 움막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소년은 새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곳의 모든 날이 반복되고 같은 듯 보여도, 이 아이만큼은 다르게 자랐다.



그래서 소년은 새의 이름을 그것을 "하루"라고 불렀다.



하루는 입을 벌리면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고기를 찢는 작은 부리를 가졌다.


소년은 사슴의 뼈를 긁어 국물을 만들었고, 작은 벌레를 잡아 새의 앞에 놓았다.

그는 하루의 울음에 귀 기울였고, 하루는 소년의 손길에 익숙해졌다.


세 달쯤 지나자, 하루는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텃밭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만큼 커졌다.

소년은 그 날개를 볼 때마다 심장이 뛴다고 느꼈다.




자신이 저 날개를 붙잡고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상상을 했다.




상상이 아니라, 계획이었다.



“넌 날 수 있어. 난, 너를 잡을 수 있어.”

소년은 매일 하루를 등에 태우는 연습을 했다.


부드러운 천으로 날개를 감싸고, 독수리의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매달렸다.



하루가 아직은 무겁게 숨을 몰아쉬면, 소년은 기다렸다.



‘아직은 아니야,’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시간은 더 흘렀고, 절벽 위엔 또 계절이 바뀌었다.

구름은 낮게 내려왔고, 멀리서 천둥이 울렸다.



소년은 점점 말이 없어졌지만, 눈빛은 강해졌다.



아버지가 죽기 전 가리켰던 동쪽 하늘을 하루도 잊은 적 없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올라오셨어요?”


“이 절벽 위로, 이 세상 위로… 어떻게요?”



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구름만 지나갔다.

그리고, 하루는 소년 옆에 와서 날개를 천천히 펼쳤다.



그날 밤, 소년은 움막의 불을 껐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하늘 아래, 그는 마지막 날을 준비했다.




몸을 가볍게 만들었고, 마음을 단단히 묶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희망과, 가장 작디작은 두려움을 품에 안고.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곳.

그 누구도 내려간 적 없는 그곳에서,

소년은 지금, 세상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소년이 떨어질지, 날아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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