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보다. 2
아침 9시 5분,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사무실 안에서는 난방이 켜져 있었고,
부녀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딸은 보라색 코트에 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은근히 고운 색 조합이었다.
내가 마스크를 벗자, 아버지가 먼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하고 묻자, 딸은 의외로 담담한 얼굴이었다.
아버지가 한참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우리 딸하고… 많이 닮았구먼.”
“그러네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따님도 저하고 많이 닮아 보이네요. 지구 인구가 60억이라는데, 비슷한 사람도 있겠죠.”
아버지는 여전히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고향은 어디요?”
“전남입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그랬구먼… 참 안타깝네.”
그는 나를 더 유심히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서울에선 누구랑 사나?”
“혼자 살아요.”
“젊은 아가씨가 돈 버는 재주가 좋구만. 부모님 유산 없이 이렇게 사업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 말에 딸이 툭 하고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도 돈 많이 버셨잖아요.”
“아냐, 아냐. 이 아가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알아보니 재산이… 1조가 넘는다더라.”
딸이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물었다.
“진짜예요?”
“네, 그렇게 되네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딸이 장난스레 물었다.
“혹시… 쌍둥이세요? 아빠, 저랑 쌍둥이 같은데요.”
“ 쌍둥이 출산한 적 없다.” 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딸이 갑자기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천억… 투자 받아주실 수 있나요?”
“좋아요. 받아는 드릴게요. 다만 원금 손실이 있을 수도 있어요.”
"내가 어르신 감사합니다. "
나는 그 자리에서 계좌번호를 받아서, 천억을 바로 이체했다.
어르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계약서도 안 쓰고 이렇게 바로 이체를…?”
“어르신은 말이 곧 문서라는 소문이 있던데요.”
나는 미소 지었다.
“더 필요하시면 투자, 더 해드릴 수도 있어요.”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나한테 이렇게 투자하는 이유가 뭔가?”
“돈 벌려고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어르신은 돈 버는 감각이 타고나셨어요. 저는 많이 배워보고 싶어서요.”
“어… 그래요.”
그는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지영 씨,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저도 사실… 김지영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셋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어르신은 식당 밖에서 대기 중인 경호원들을 힐끗 보며 말했다.
“경호원 데리고 다니는 거 보면… 험한 일도 많이 겪은 모양이구먼.”
“그러게요. 생각보다… 세상이 험하더라고요.”
경호원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드리라고 하였다.
“앞으로 제 스승님이십니다.”
최 실장과 경호원들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주말에는 남산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는 초대를 하였다.
카페에서 잠시 차를 마신 뒤, 오후 2시쯤 헤어졌다.
다음 날, 30층 건물의 회장실을 찾았다.
1층에 도착하니 건물 관리소장이 직접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직원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여자 경리 두 명, 소방 담당자, 기타 직원들까지.
대략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나를 향해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
회장실에 들어가자,
최실장과 그의 부인이 손수 꾸며놓은 깔끔한 공간이 펼쳐졌다.
그날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겨울이지만, 마당에서는 춥지 않게 바비큐 파티를 준비해 두었다.
눈이 내릴 듯한 하얀 공기 속에서도 이상하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 5시, 나는 이유 없이 마음이 설레었다.
어쩌면… 저분이 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떠오르는 기억 하나.
아버지는 조개를 좋아하고, 찰밥을 특히 좋아하셨다.
나는 도우미에게 그렇게 메뉴를 부탁했다.
경호원들과 직원들이 숯불을 피우고 준비를 마칠 무렵,
대문 안으로 검은색 벤츠 한 대가 조용히 들어왔다.
역시나 기사까지 동행해 있었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내려오는 딸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었다.
어르신은 나를 보며 감탄한 듯 말했다.
“젊은 아가씨가… 생각보다 대단하고만.”
“과찬이세요, 어르신. 이쪽으로 오세요.”
조개와 찰밥을 보더니 어르신의 눈이 조금 놀란 듯 흔들렸다.
“내 식성까지 파악을 했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하셨어요.”
숯불 두 개를 피워 올려놓고, 최실장 부부가 고기를 손질했다.
딸과 나는 나란히 서서 고기를 구웠다.
“약주 한 잔 하셔요.”
나는 시바스 리갈을 꺼내어 테이블에 올렸다.
딸이 반가운 듯 말했다.
“이거 제가 좋아하는 술인데요… 저도 한잔…”
그렇게 우리의 저녁은 천천히, 은은하게 행복으로 물들어갔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딸에게 말했다.
“내일… 사무실에 한번 놀러 와요.”
그 말을 들은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면 배울 게 많은 아가씨다.”
딸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내일 12시까지 갈게요.”
밤이 깊어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나는,
거실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며 되뇌었다.
어찌해야 하나…?
말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나 또한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느낌뿐이었다.
술을 한 잔 더 들이키고,
나는 깊고 무거운 잠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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