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구경, 불구경.....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이 요즘 유난히 실감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들을 데리고 나이트클럽에 갔다.
만날 때마다 한 사람당 천만 원씩 챙겨주었고, 술값만 해도 오백만 원은 훌쩍 넘었다.
11월까지 네 군데의 나이트클럽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다.
물론 나는 술만 마셨다.
그것도 내 돈 주고 마신것이다.
하지만 결국, 네 명이 싸움 직전까지 가버렸다.
돈 앞에서는 의형제도 소용없었다.
검사들이 매일 들락거리니 그들끼리도 불안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구경만 하기로 했다.
사업이란 원래 그런 거다.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저 네 명의 의리는 오래가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가장 힘이 약한 조직을 최 실장에게 맡겼다.
관리는 돈으로 하는 것이다.
12월 15일이다.
마당에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곧 27살이 된다.
내년엔 좀 쉬어야겠다.
IMF 시대에 뭘 더 한다고 버텨봤자 뻔하다.
최 실장이 토끼 두 마리를 들고 왔다.
마당에 작은 집을 지어주고 울타리도 만들어주었다.
며칠 전에는 새끼 다섯 마리도 낳았다.
토끼는 땅굴을 파고 그 속에 어린 것들을 꼭꼭 숨겨두었다.
가끔 나도 당근을 건네주는데, 참 잘 먹는다.
날이 추워서인지 나는 요즘 사우나를 자주 간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좋았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사형을 당했을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이제는 이 생각도 그만하고 싶다.
파고들수록 우울해진다.
사무실에 들러 유리창 너머로 눈 내리는 걸 구경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지하 식당가에 내려가 점심 먹는 것도 은근 즐겁다.
식당이 열 개는 넘는 것 같은데, 딱히 세어보진 않았다.
눈 오는 날엔 순두부찌개가 그렇게 맛있더라.
한국 사람은 역시 국물이다.
최 실장이 보고를 하러 들어왔다.
“회장님, 네 명이 곧 싸움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왜?”
“제가 관리하는 두목이 위 형님들 구역을 넘보고 있습니다.
옆 나이트클럽을 인수하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너가 인수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해.”
“네, 회장님.”
최 실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막내 두목이 어르신 사채업체까지 욕심을 냅니다.”
그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최 실장도 굳이 말해줄 이유는 없다.
“욕심이 과하구나. 일단 더 지켜봐라.”
“네, 회장님.”
저녁에는 증권사 직원들과 약속이 있었다.
13명이라 내가 소고기를 사주기로 했다.
7시에 보자고 해두었다.
하루 종일 눈발이 흩날렸다.
오후엔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6시이다.
비서도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던 중 최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장님.”
“응, 그래. 가자.”
나는 걸어가겠다고 했다.
증권사 직원들과 만나기로 한 식당은 빌딩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곳이었다.
비서가 우산을 씌워주며 문을 나섰다.
식당에 들어가니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서와 함께 들어서자 남자 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증권사 여직원도 네 명이나 와 있었다.
“편하게 드세요.”
내 말에 모두들 눈치 없이 웃으며 소맥을 말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금세 부드러워지고, 시작보다 훨씬 따뜻해졌다.
밤 9시가 되자 우리는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오늘은 유난히 가수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스테이지 앞 다섯 테이블을 양주로 세팅해놓았다.
한 시간 정도, 남자 직원들과 돌아가며 부르스를 췄다.
비서도, 여직원들도 기분이 한껏 올라 있었다.
부르스는 역시 남자랑 할 때 느낌이 살아난다.
나는 남자 직원들 전부와 춤을 추었다.
여자 6 명과 남자 직원들이 뒤섞여 춤추는 모습은 꽤 괜찮은 조합이었다.
당연히 내 비서는 인기가 많았다.
나는 너무 어려워서 남자들 가까이 달라붙지를 못하더라.
하지만 비서는 가슴이 터질 듯 꼭 끌어안고 춤을 췄다.
그래서 나도 일부러 남자들을 더 꽉 안아줬다.
나도 B컵이니까.
놀다 보니 직원들을 보낼 시간이 됐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인지라 모두 일찍 귀가했다.
최 실장이 계산을 마친 뒤, 나는 혼자 앉아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잠시 후, 사장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회장님,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내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필요하신 거라도… 저 여가수 오라해?”
“네.”
노래를 마친 여가수가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나는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노래 잘하네.”
“감사합니다.”
“몇 시에 끝나?”
“오늘은 끝났습니다.”
“포장마차 가서 술 한잔 할래?”
“영광입니다.”
밖으로 나오자 근처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그 시절엔 어디에나 포장마차가 많았다.
여가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청바지가 특히 잘 어울렸다.
스판 소재가 다리 라인을 잡아주고, 구두에 코트를 걸친 모습이 청순했다.
우리는 소주를 한 잔씩 주고받았다.
나는 꼼장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그녀 입에 넣어주었다.
“몇 살이야?”
“스물다섯입니다.”
“집은?”
“남산 아래 원룸 살아요.”
“우리 집 근처네.”
“네, 지나가다가 회장님 댁 봤어요.”
“내가 생각보다 유명인사인가 보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명동에서 회장님 모르는 사람 없어요.”
그때, 최 실장이 급히 들어왔다.
“회장님,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나이트클럽에서 싸움이…
큰 두목이 막내 두목을 습격한 것 같습니다.
회장님 계신 걸 알고 일부러 벌인 것 같습니다.”
나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최 실장과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너희 다섯 명이 나 잘 지켜. 나는 그냥 술 마실 거니까.”
“네, 회장님.”
경호원들이 삼단봉과 가스총을 꺼냈다.
여기서 불과 50미터 거리였다.
십여 분 동안 싸움이 이어지는 듯했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 비명, 욕설이 섞여 들렸다.
나는 포장마차 밖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경호원 다섯 명이 내 앞에 서서 양손에 무기를 든 채 주위를 경계했다.
내 한마디면 목숨을 걸고라도 싸울 직원들이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아 들이곤 가수에게 건네주니,
그녀는 능숙하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때, 내 앞으로 큰 두목이 미소를 지으며 차를 타고 천천히 지나갔다.
의도적인 인사 같았다.
잠시 후, 멀리서 사이렌이 울렸다.
사복기동대를 비롯해 수십 명의 경찰이 우르르 출동해왔다.
싸움판 뒤처리를 하러 온 게 분명했다.
“마저 술 마시자.”
“네, 회장님.”
안주를 더 시키고 소주를 기울이고 있는데,
내가 진급을 시켜준 여자 경찰서장이 찾아왔다.
나는 잔에 소주를 따르고 건넸다.
“한 잔 하고, 가서 일 봐.”
“네, 회장님.”
서장은 잔을 비우고 곧바로 걸음을 돌렸다.
나는 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 할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장님.”
안주 몇 가지를 포장해서 집으로 향하니 어느새 자정이 넘어 있었다.
둘이서 양주 한 병을 비우고,
거실에서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었다.
장작불이 타오르는 따뜻한 온기 덕분에,
추운 줄도 모르고 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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