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명동의 새로운 계보

by 전태현 작가



추위에 잠이 깨었다.

옆을 보니, 가수가 내 이불 속 깊숙이 파고들어 자고 있었다.
난로에 장작을 더 밀어 넣자, 불길이 다시 살아났다.
아직도 새벽 같은 7시.

밖은 겨울의 어둠에 잠겨 있다.



나는 목욕물을 받아두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가수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저도 하나 주세요.”

그녀의 입술에 담배를 물려주자, 얇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제 싸움… 어떻게 된 거예요?”

“글쎄. 나도 아직은 몰라.”

“왜?

궁금하니까요?”

“너는?”

“네… 쬐금요.”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네가 상황 좀 정리해봐.”

가수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고는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큰오빠가 경고 차원에서 온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이번 기회에 막내오빠 아예 쫓아버릴 생각일 수도 있고요.”

“너 같으면 경고 정도 하겠니?”

“아뇨. 전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경고는 아니야.”


가수는 잠시 눈을 내리깔더니 속삭였다.

“회장님이… 막내오빠 뒤 봐주고 계신 거예요?”

나는 웃었다.

“누군가는 분명 봐주고 있지. 그러니까 저렇게 날뛰는 거예요.”

“그럼… 회장님은 누구 편이에요?”

“넌?”

가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딱 잘라 말했다.

“저요?

일 많이 주는 나이트클럽이 최고예요.”

“하루 얼마나 버니?”

“한 타임당 10만 원이요.

보통 두 타임 들어가면 고정이고… DJ 보면 더 벌죠.”

“너도 DJ 보니?”



“네. 이틀에 한 번꼴로요.”

7시가 되자 도우미가 출근했다.
나는 가수에게 말했다.

“샤워하자.”

“네.”

복도 건너 식당에 외쳤다.

“이모, 시원한 해장국 좀 주세요.”

“네, 회장님!”



우리는 욕실에서 비누칠을 해주며 천천히 몸을 씻어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태탕이 차려져 있었다.

“최 실장에게 말해요. 오전은 쉬자고.”

“네, 회장님.”



우리는 속풀이하듯 소주를 세 잔씩 나눠 마셨다.
따뜻한 국물과 차가운 소주가 함께 내려가자 속이 확 풀렸다.

막잔을 들던 순간, 최 실장이 급히 들어왔다.



“회장님… 왜?”


“방금… 막내 나이트클럽 사장, 병원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잔이 손끝에서 흔들렸다.

“이유는?”

“칼에… 세 군데 찔렸답니다.”

“다른 건?”

“아직 확인 중입니다.”

“…그래. 더 알아봐.”

나는 가수에게 말했다.

“옷 챙겨. 사우나 가자.”

“네.”



우리는 남산 밑 사우나로 향했다.
한증막에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땀을 쏟아내자 온몸이 가벼웠다.
젊음의 선이 그대로 살아 있는 몸매가 땀에 젖어 빛났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11시 30분이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지검장님, 저녁에 약속 없으시면 식사하시죠.”
“좋습니다.”
“잠시 후 장소 문자드리겠습니다.”
“네, 회장님.”

전화를 끊고 바로 여자경찰서장에게 연결했다.

“어제 사건… 크게 키우지 말고 단속만 잘해. 자세한 건 저녁에 말해줄게.”

“네, 회장님.”

나는 최 실장을 불렀다.

“특별한 건?”

최 실장이 잠시 눈치를 보더니 입술을 다물었다.

“없습니다. 하지만… 큰형이 막내를 친 거 확실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다음 판을 그려내고 있었다.
명동의 계보가 다시 그려질 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오늘… 어르신께 봉사 한번 해라.”
내 말에 가수의 표정이 굳었다.
“네 인생이 바뀔 수도 있어. 해볼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눈을 깜빡이며 망설였다.
나는 한마디를 더 얹었다.

“봉사란… 몸으로 하는 거다.”



가수의 어깨가 떨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

“네, 회장님.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최 실장 집으로 가자.”

S호텔 특실로 예약을 하였다.
가수에게 내가 입던 옷 중 가장 품위 있는 드레스를 입혔다.
화장은 직접 해줬다.
밤의 호텔 조명 아래 빛나도록 말이다.

그리고 현금 20억이 들어 있는 대형 가방을 준비했다.
오늘의 주요 소품이었다.



4시 30분.
호텔 방 안, 가수와 둘이 마주 앉았다. 그녀는 손끝마저 떨고 있었다.

“5시에 셋이 밥 먹으면 돼. 너무 긴장하지 마.
오늘 최선을 다해 접대해줘. 보상은… 충분히 해줄게.”

“네, 회장님.”



5시 정각.
지검장이 들어왔다.
10분 전에 셰프들이 차려놓은 최고급 코스 요리가 식탁 위에서 김을 올리고 있었다.

“지검장님, 배고프시죠. 일단 식사하시죠.”

와인 한 잔, 최상급 스테이크.
우린 세 사람의 식사처럼 보이는, 그러나 목적이 분명한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나는 가수에게 말했다.

“최 실장 들어오라고 하고… 너는 담배 한 갑 사와.”

“네, 회장님.”

가수가 나가자 최 실장이 들어왔다.

“지검장님 차에… 가방 실어드려라.”

“네, 회장님.”



나는 지검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나이트클럽 사망 사건 보셨죠?”

“네.”

“공격한 두목… 죄명이 몇 개쯤 나올까요?”

“살인교사, 폭행, 감금, 협박… 만들기 나름이죠.”

“말씀하신 대로 진행해주시고. 두 번째, 세 번째 라인 두목도 같이 묶어주세요.
가방엔 반금으로 20억 들어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30억 더 인사드릴게요.



그리고—오늘은 아가씨는 선물입니다.”

지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명령을 내렸다.

“세 명… 전부 지명수배로.”

잠시 후 가수가 담배를 사와 들어왔다.

“왔니?”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모셔라.”

그 순간 지검장의 입가에 음흉한 곡선이 스르륵 그려졌다.



호텔 방 안이 싸늘하게 뒤틀렸다.

악수를 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레스토랑의 작은 룸.
나는 최 실장과 마주 앉았다.

“오늘 내일 사이에… 두목 세 명 전부 구속될 거다.”

“네…”

“남을 사람, 갈 사람… 다 정리해.
그리고 네가 네 개 라인을 맡아라.
위험한 일은 절대 직접 나서지 마.”

“네, 회장님.”



최 실장이 진지하게 말을 덧붙였다.

“회장님… 이제 경호 인력을 더 늘리셔야…”

“그래. 좀 더 보고 하자.”

“네.”


8시.
전화가 왔다. 가수였다.

“회장님… 가시고 나서… 저 혼자예요.”

“그래. 내가 올라갈게.”

“네… 무서워요.”

호텔 문을 열자,
가수는 이불 속에서 알몸으로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얼굴엔 번진 화장, 눈가엔 억눌린 공포가 보였다.



사랑 없는 몸의 교환이 그녀 같은 평범한 여자에겐 칼날이었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올렸다.

“고생했다.”

그 말 한마디에 가수는, 내 품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참아내던 공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가자. 삼겹살 먹고 소주하자.”

“네…”

그녀는 화장도 다시 하지 않았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나를 따라 나왔다.



한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삼겹살집으로 왔다.
그곳의 불빛만이 오늘 밤 유일하게 따뜻했다.


“지검장님이… 저 어리다고 너무 좋아하시던데요.”
가수는 웃음을 지었지만, 그 뒤에 억눌린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렇게 힘센 남자… 처음이에요.”
말을 잇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근데… 들어보니까, 배운 사람들일수록 더 변태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네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응… 잘했다.”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렸는지, 가수는 여유롭게 숨을 내쉬었다.

“당분간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

“네, 회장님…”


그날따라 소주가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배부르게 먹고 집에 돌아오니, 시계는 어느새 11시이다.


가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나는 불을 끄고 난 뒤에도 한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창밖에는 겨울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벌어진 일들이, 그리고 내일 펼쳐질 것들이
마치 어둠 속에서 조용히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내일 일이 더 기대되는 밤이었다.




https://www.youtube.com/@%EA%B7%B9%ED%95%9C%EC%83%9D%ED%99%9C


이전 14화제14회.내가 다시 태어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