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by 전태현 작가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피우는데, 최실장이 들어온다.

8시다.
나를 보더니 말한다.



“밤에 3명 모두 체포됐고, 밑에 애들도 20여 명 체포되었습니다.”

서장에게 전화해서 사복형사 몇 명 도움받고 오늘 중으로 가서 접수해라.
“네.”

막내 나이트클럽 가수 보고 운영하라고 해라.
“네.”



회장님, 진짜요... 응, 너가 수고했잖아.
와, 고마워요.
회장님, 바지 사장이어도 괜찮아요.
회장님이 계시는데 하나도 안 무서워요.



1997년 3월이다.
한 달 사이에 명동 4개의 조직폭력배는 완전히 장악되었다.
명동을 중심으로 엮어진 조직들이다.
관리는 최실장이 하고, 각 조직 두목은 서열순으로 하였다.

가수는 나이트클럽 사장이 되었다.
가수의 노래가 듣고 싶으면 언제든 가면 불러준다.
나이트클럽 옆으로 오피스텔도 얻어주었다.



사실 서울시의 조직을 평정한 것이다.
아직까지는 나도 더 욕심은 없다.
여기서 받은 수익금은 나는 손대지 않는다.

정치상납금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07년, 내 나이 37살이다.

사채딸 김지영은 IMF 시대 전인 1996년에 귀국하였다.
내가 김지영의 미래인 김지영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내가 명동을 정리하는 그 시절 귀국해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
어르신은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다.



내가 투자한 5천억 원과 어르신의 재산을 모두 현금화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
1조가 넘는 돈을 투자했다.
주식에 5천억 원,

서울·경기·부산 등 공장 건물, 부도난 회사 등을 대출 없이 엄청나게 사들였다.
고금리 사채, 콜자금 등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2002년 모든 부동산과 주식을 현금화했다.


그렇게 5년 동안 10조가 넘는 돈을 벌었다.

무한대의 욕심이다.
나는 조절을 하지만, 그녀는 조절이 없었다.

사실 무서웠다. 나를 보는 것 같다.

그녀는 명동 근처에 50층 빌딩을 매입했다.

여기서는 가장 높은 빌딩이다.



나보다 돈이 많다.
지난 10여 년, 크게 발전 없이 유지만 하고 나는 살았다.

그녀는 무서운 도약을 한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은 정치인과 검사들을 관리한다.
청와대까지 손이 닿았다.
그녀가 귀국하고 나서 1년에 한 번 정도씩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큰 일은 명동 사채시장을 통일했다.


많은 사람이 분명 죽었을 것이다.
경호원도 20명이나 된다.
무서울 것이 없는 여자가 되었다.

내가 투자한 5천억 원에 5천억을 더해 나에게 상환했다.
어떠한 조언도 필요 없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다.



내 30층 빌딩과 김지영 50층 빌딩은 불과 직선으로 500m 거리다.
나 역시 특별히 답이 없다.

그냥 있는 수밖에 없다.


최실장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자랐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이다.
아이들이 원하면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줄 생각이다.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고 성실하다.

남산 밑에 주택을 사주었다.



지금 집과 차로 10분 거리다.

경호원도 4명 모두 결혼했다.
추가로 신입 경호원 4명 더 들어왔다.
미혼이라 별채에서 생활한다.
결혼한 직원들은 집 근처에 2층 빌라를 다 얻어 주었다.

아니, 선물한 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조폭’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직영으로 나이트클럽 2개만 운영 중이고,
조직원들도 먹고살라고 관여하지는 않는다.

최실장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
상납금도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지난 10년 큰 사건 없이 지내왔다.



사채 역시 큰 사건 없이 통일됐다.
정치인, 검찰, 경찰 모두 돈으로 동원된 것이다.
어르신 딸 김지영이 대단하다.



오늘은 최실장 부인이 집 근처에 카페를 오픈한다.
크지는 않지만, 아이들도 크고 삶이 지루한 모양이다.
17년을 나와 함께했다. 최실장이 차려준 모양이다.

직원들하고 가니 나를 앉혀주며 반겨준다.
두 아들도 앉아 주었다.



“이모님, 잘 지내셨어요?”
“응, 조카님도 잘 지냈어.”
“네.” 돼지머리에 봉투를 꽂아주고.

오전 11시 30분, 우리끼리 식사를 하였다.
영산포 홍어가 나왔다.


장모님이 만들어주신 거라고 한다.
특별히 손님은 없고, 식구들끼리 점심 먹는 자리다.
부인도 돈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17년 나와 함께 있으면서 평생 써도 못 쓸 돈을 최실장에게 주었다.



특히 상납금의 30%를 최실장과 경호원이 가지고 갔다.
그렇지만 관여하지는 않는다.
내 옆에서 나를 잘 보필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2시쯤 전화가 왔다.
“회장님이 전화도 주시고 영광입니다.”
이제 나도 호칭을 회장으로 부른다. 나보다 돈도 많은 여자다.
사채딸 김지영이다.



“차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했다.”
3시에 50층 사무실로 간다고 하였다.
나에게 전화까지 한 것을 보면 뭔가 부탁이 있는 것 같다.

2시 40분, 사채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도 1층은 은행, 2층은 증권회사이다.

내 건물과 다른 은행이다.

50층으로 올라가니 그녀가 나를 앉혀주며 반겨준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서로의 눈빛만 보고 있었다.



사채딸이 먼저 말을 한다.
“회장님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을 했나요?”
“모든 것이, 아니 모든 상황이 그리 생각을 유도하네요.”
“우연의 일치겠지요.”
“나의 미래를 아시나요?”
“당황스러웠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어찌 알아요.”
“혹시 또 다른 나인가요?”
“(웃으며)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어디 아프세요?”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차 마시자고 한 이유가 이것인가요?”
“네.”
“오늘 서로 얼굴 본 것으로 만족하네요.”



불과 15분이다. 사무실에서 나왔다.
내가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나도 심증뿐이지, 정확하게 증명할 방법은 없다.

50층 빌딩에서 나오니 오만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다.
혼자 걸었다.



10여 분을 걸으니 작은 공원 벤치가 보여 앉아 담배를 찾으니 최실장이 담배를 내민다.
한 모금 깊이 빨고 최실장에게 질문을 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무엇을?”
“사채딸하고 관계를?”

“너 생각을 솔직히 말해봐.”
“예전보다 더 거리를 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응, 사채는 요즘 얼마나 굴리니?”
“1조는 넘는 것 같습니다.”
“재산은?”
“대략 15조 정도.”
“나머지는?”
“주식하고 부동산 손대고 있습니다.
주로 정치인들과 많이 식사하고…”
“이유는?”
“지방의 신도시하고 계획도시 정보를 알아내려고…
최근에 한강변에 아파트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얼마나?”
“3조입니다.”
“예상 수익금은?”
“1년 안에 3조 수익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시간을 넘게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생각 안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들이다.
시간이 5시다.



“최실장, 너는 일찍 들어가라.”
“네.”
“나는 늦게까지 있을 거니까.”

최실장을 보냈다. 장모까지 와 있는데…



참치집에서 식사하는데 가수가 왔다.

하얀 미니스커트에 가느다란 허벅지가 이쁘다.
나이트클럽 사장, 10년째 하고 있다.
“회장님, 표정이 안 좋으세요?”
“아니야, 술 마시자.”



9시까지 술 마시고, 나이트클럽에서
둘이 12시까지 술 마시고, 부킹하고 다녔다.
손님들도 조명 아래라 우리 두 사람을 그냥 놀러 온 아줌마 정도로만 생각한다.
어린 남자들하고 술 마시니 좋기는 하다.



기억이 없을 정도로 마셨다.
요즘 들어 과음을 하면 기억이 없다.
1년에 한두 번뿐이다.



어렴풋이 차 타고 온 것은 기억이 난다.

침대에 가수가 누워있다.
내가 안아주며 “잘 자니?”
“네.”
“더 자라.”
“네.”

그녀의 가슴을 살며시 만져주며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시간은 아침 8시다.
도우미가 아침 준비 중이다.
최실장에게 “점심 먹고 나간다고 해요.”
“네, 회장님.”



혼자서 국에 밥을 먹었다.
가수는 보통 점심 때나 기상한다.
나이트 마감할 때까지 일하기 때문이다.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본다.



삶이 썩 즐겁지는 않다.
뭔가 나도 배워보고 싶어졌다.
가수처럼 노래도 부르고 DJ도 해보고 싶다.



일어나면 말해봐야겠다.


봄비가 참 청량하고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