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클럽 쇼걸2
일주일에 DJ 세 번, 쇼타임 3번을 하였다.
클럽 사장은 빠지고 25살 남, 녀 둘하고 나만 진행을 하였다.
클럽 사장은 사람들 섭외하고 관리하느라 바쁘다.
요즘에는 무명 가수하고 사귀고 있다.
특별히 사생활은 더 안 물어보았다.
느낌으로는 동거 비슷하게 하는 것 같다.
그렇게 37살의 가을이 물러가고 있었다.
남, 녀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알 수가 없다.
남자는 형주이고 여자는 지선이다.
한 시간 연습하는 시간보다 1분 공연하는 그 순간이 감동이고
나에게는 엄청난 자극이었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스킨십에 너무나 자연스럽다.
셋이 한 방에서 잠자는 날도 많다.
그냥 동물적인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둘에게 차도 사주고, 옷과 명품들을 많이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나와 이리 놀아주는 대가로 봉투로 매달 따로 준다.
금액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만나는 연인이 있다.
쇼는 점점 더 자극적인 연출이 이루어졌다.
노골적이다는 표현이 맞다.
태국 같은 나라에서는 무대에서 직접 성행위를 한다고 한다.
한국은 아직 문화가 안 된다.
막상 해보니 태국 문화를 이해한다.
연출은 둘이서 대본을 만든다.
그렇게 큰 물건은 본 일이 없다. 영화배우 이대근이 생각난다.
나도 지선이도 기절한 날이 여러 날이었다.
나는 내 입이 그렇게 큰 줄을 몰랐다.
소리를 지르면 하마 입처럼 커지더라.
12월이 되니 나이트클럽이 바빠졌다.
쇼타임을 하루 세 번으로 한다.
나는 한 번만 하고 안 한다.
요즘에는 오일쇼를 한다.
보는 것만으로 관객은 엄청난 자극이고 사운드에 다들 죽더라.
클럽 스피커가 좋기는 한갑다.
12월 중순쯤 민원이 들어왔다.
춤이 너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는
국민신문고에 들어온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해도 인정되는 부분이다.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조명이 거찔 때는 실제 장면처럼 했다.
실루엣만으로도 민원 들어올 만하다.
클럽 사장이 당분간 쇼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DJ 볼 때로 쇼가 달라 붙어졌다. 2배는 강해진 것 같다.
여자는 브래지어를 안 하고 색종이로 가렸다.
남자들의 빨강 색종이만 바라본다.
남자는 은박지로 가렸다.
나는 회장 최면도 있고 해서 비키니로 입었다.
다행히 공중파 연예인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그렇게 연말이 지나고 연초도 지났다.
1월이라 한가하다.
지선은 12월까지만 하고 돈 많은 남자 만나서 결혼을 하였다.
손님으로 와는데 춤에 반해서 결혼까지….
살다 보면 이런 일은 허다하게 많다.
1월부터는 형주하고 나와 둘이 진행한다.
셋이 하다가 둘이 하니 집중도가 300%는 높아졌다.
오늘이 형주하고 마지막 쇼이다.
내가 말했다.
“우리 실제처럼 한 번 연출해보자.”
“네, 회장님.”
그리고 진짜 쇼가 끝나고
무대의 커튼이 가려졌다.
조명도 꺼지고
탁자 위에 눕혀지고 진짜 왕버섯이 들어왔다.
관객들은 환호하며
“이거 진짜야? 가짜야?” 웅성거릴 뿐이다.
3분간의 타임이…
"내인생 최고의 순간 이였다."
공연이 끝나고 형주를 불렀다.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잔 하면서…
봉투를 담아 주었다.
고맙다.
“제가 회장님하고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명동 거리를 걸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생겨서 나이트클럽에서 놀 일이 아니었다.
걷다 보니 사보이 호텔이 보였다.
최실장에게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란다.”
“네, 회장님.”
호텔에 들어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시간은 아침 6시다. 밖은 컴컴하다.
내장 깊숙이까지 들어가는 담배 연기가 참 좋다.
창문을 열으니 시원한 찬바람이 내 뼈속까지 들어온다.
고통 같은 쾌락이다.
지난 1년 모든 것을 망각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왜? 서울까지 왔을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떠오르던 그때쯤
사채 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러는 사이 사채딸은 쌍둥이 딸을 출산했다.
남자는 유학에서 만난 평범한 대기업 직원이다.
그녀는 명동을 떠날 생각이 없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잊어버렸던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에 많이 떠올랐다.
쌍둥이 딸은 내가 출산한 아이들이라는 생각들이다.
필름 조각처럼 간간히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명동을 떠날 수가 없다.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조폭과 완전히 손을 끊고, 합법적인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40살 어느 날,
사채딸 김지영이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