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던 밤, 그리고 이별의 문턱
지난밤, 남편의 사랑은 마치 태풍처럼 거침없었다.
그 강렬한 시간 속에서 나는 묘한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오빠’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조용히 마무리 지었다.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추억이었다.
후회는 없다.
단 한 번, 유부녀로서의 짧은 일탈이었다.
남편은 눈치채고도 애써 모른 체해주었고,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 역시 덮어두기로 했다.
‘오빠’에게 작별 인사를 문자로 전할까 망설이다가,
먼저 연락이 오면 그때 이야기하자고 마음먹었다.
그 역시 상황을 충분히 알았기에 더 만남을 이어가자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성인이며, 이성의 판단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아침 8시 오빠다. 정확한 시간에 문자가 도착했다.
“좋은 아침.”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곤 차분히, 정중하게 마음을 정리해 문자를 보냈다.
“오빠, 미안해요. 남편이 눈치를 챘어요.
현명하신 분이라 더 이상 연락하시지 않을 거라 믿어요.”
그는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확실하진 않지만, 감지한 것 같아요. 건강하세요.”
“오빠도 건강하세요.”
그리고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마침 딸이 집에 있었다.
“우리, 같이 아파트 단지 산책할래?”
딸은 운동이 필요하다며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나란히 걸으며 우리는 모녀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 확인차였겠지.
“딸이랑 산책 중이에요.”
딸이 “아빠~” 하고 반가이 외치자, 남편의 마음도 놓인 듯했다.
“저녁에 일찍 들어갈게.”
“응, 맛있는 거 해놓을게.”
저녁엔 남편이 퇴근과 동시에 들어왔다.
제과점에서 빵도 사왔다.
어쩐지 오늘따라 남편이 참 다정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들도 일찍 귀가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전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 모였다.
식사 후, 밤 9시쯤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사적인 시간도 자연스레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남편이 말했다.
“특별한 식사 없으면 일찍 들어올게. 친구들 약속 있으면 다녀와도 돼.”
“당신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언제부터 그랬다고, 새삼스럽게.”
그리고 우린 웃었다.
그 순간 남편의 손길이 내 가슴을 지나갔다.
놀랍게도, ‘오빠’를 만난 이후로 남편의
손길 하나에도 내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고장 났던 감각이 다시 깨어난 것처럼.
예전보다 그의 손길은 여유로워졌다.
이전에는 어딘가 날 의심하는 듯한 불편한 감촉이었지만,
지금은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남편은 모든 걸 알기에, 말없이 나를 충분히 품어주려 애쓴다.
오늘밤 그는 유난히 강렬했다.
이 자세로 사랑을 나눈 건 몇 년 만이었다.
나는 그저 말없이 받아들였다.
남편이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안에 머물기로 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혼자 걷는 시간도 많아졌고, 동생과 수다도 자주 나누며 요리도 즐기게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되었고, 내면도 한층 단단해졌다.
모든 것이 나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빠’와의 작별 이후 며칠간은 혼란스러웠다.
슬픈 음악을 들으며 혼자 울기도 했고, 마음이 가라앉아 있기도 했다.
그런 나를 남편은 말없이 감싸주었다.
일찍 퇴근해 와주었고, 그 모습이 천사처럼 느껴졌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마음이 쓸쓸해진다.
빗줄기가 온몸을 파고드는 듯한 기분이다.
문득 ‘오빠’ 생각이 난다.
그러나 더 이상 혼란스럽지는 않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우린 서로의 상황을 이해했고, 이별을 택했다.
원망도 미련도 없다. 추억으로 남기면 그만이다.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그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비 오는 소리가 좋다. 더 세게 내려다오, 비야.
고막이 찢어질 만큼 요란하게, 더 쏟아져다오.
그러나 나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볼 뿐이다.
‘오빠’는 내 안에 또 하나의 우주를 남기고 간 사람이다.
내 감각의 지도를 다시 그려준 사람.
남편의 손길만으로도 오빠의 흔적이 떠오른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고마웠다.
그는 정말 섬세했다.
남편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그 무언가.
흉내 내려면 먼저 알아야 하니까.
그렇다고 그 기억에 연연하진 않는다.
나는 진공청소기로 머릿속을 말끔히 비워냈다. 깨끗하게.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잊으려고해도 잊을수가 없는 사람이다.
남편과는 달랐다.
어쩌면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달리기 시합처럼,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 어딘가에서 또 다른 여인과 잘 살아가고 있겠지.
바람둥이 오빠야.
부디 행복하길 바래요.
5월의 하순이다. 자연이 피어오르는 계절.
내가 느끼고,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건 바로 ‘비’다.
특히 장대비가 좋다.
지붕을 때리는 그 거센 소리가 나를 위로한다.
때로는 가랑비도 좋다. 내겐 비 자체가 큰 위안이며, 위로이고, 친구다.
나는 매일 걷는다. 하루 만 보, 많을 땐 이만 오천 보.
단단해지는 다리에 힘이 붙는다.
사랑의 기술은 튼튼한 하체에서 시작된다는 걸 몸으로 배운다.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늘씬한 다리에서 이토록 강한 힘이 나오는 걸,
나조차도 때로는 신기하게 여긴다.
조선시대 명기 황진이도 내 다리처럼 강했을까?
아니다. 언니는 얼굴도, 몸매도, 다리도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감히 내가 비할 바는 아니지.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
6월 한 달 내내 비를 보게 될 것이다.
비는 나의 친구.
어쩌면 나만큼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비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