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도시의 아침에는 비밀이 많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여자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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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빠가 왜 공원에 나타났는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로 공원은 발길이 닿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산책길을 만들었다.

집에서 30분쯤 걸으면 도착하는 대학교이다.

정문을 터치하고 경비실까지 돌아오면 거의 한 시간이 되고, 교정을 한 바퀴 돌면 1시간 30분의 여유가 된다.



이어지는 산책은 늘 음악이 함께했고,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정문 근처 벤치에 잠시 앉아 쉬고,

다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아오면 마음이 어느 정도 정돈되었다.



동생과 가벼운 수다를 나누는 것도 나름의 소소한 위안이 되었다.

물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40일 만에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잘 지내니? 보고 싶다."

나는 짧게,

"네."

라고 답했다.


그 한 글자가 나의 감정을 통째로 흔들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기억들은 영화 스크린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혼란스러웠고, 감정은 제어되지 않았다.


"잊으려 애썼지만, 칠판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지지 않더라.

오늘 한 번만, 딱 한 번만 만나자. 준비 없이 헤어진 게 마음에 걸려서..."




답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다시 도착한 메시지.


"자기야, 오늘 9시에 공원 입구에서 만나자. 단 한 번만이야."



그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태풍 앞에 선 가느다란 나뭇가지처럼 휘청거렸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망설이다 결국 자판을 눌렀다.



"9시 30분에 뵐게요. 오늘 한 번만이에요."



"그래. 고마워."

그와의 약속을 정하자마자 심장이 요동쳤다.

마음속에 잔잔하게 잠들어 있던 파문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잊고 있던 떨림이 되살아났다.



현관을 나서기 전, 문득 스쳐간 생각이 있었다.



'혹시 오빠는 이미 다른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을까?'

그러나 그런 의문은 잠시였고, 오직 그를 만난다는 설렘이 앞섰다.

공원 입구 저편,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검은 재킷에 흰 셔츠,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나를 보며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으며 웃었다


"잘 지냈어?"


"네. 오빠는요?"


"너 생각하면서 살았지."

우리는 어색하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기억처럼 익숙했고, 다시는 오지 않을 감정처럼 설레었다.

그와 함께 찾은 공간은 소박한 숙소였다.

주차장에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스치듯 건넨 인사는 여운을 남겼고,

방으로 향하는 복도에서도 그는 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문을 닫고 들어선 그곳은 낯설지만 이상하게 평온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고, 잠시 후 그가 말없이 음악을 틀었다.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고, 그는 나에게 춤을 청했다.


"춤, 한 곡 하시겠어요?"


나도 모르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 마음은 아직도 그를 향해 깊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모든 감정의 경계를 허물고, 오래된 연인처럼 서로에게 기대었다.

부끄러움도, 거리감도 사라진 채, 단지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천 년을 살 수 있다면, 백 년은 너를 기다릴 수 있을 거야."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순간은 고요하고 충만했다.

그리고 끝내 묻지 않았다.



이 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어떻게 될지를 말이다.


오빠는 나를 차에 태워주었고, 다시 공원 앞에 내려놓았다.

아무 말 없이 손을 흔들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방안의 침대에 몸을 던지자 숨이 깊어졌다.

오늘 하루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다.



좋은 날이었다. 좋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마음 한쪽에서는 작은 바람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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