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의 진실
지금부터 (주)현 그룹 창업주 전성근 회장의 유언장을 낭독하겠습니다.
이 유언장은 회장님의 연세 80세 시절,
법률대리인인 저 김 변호사와 함께 작성된 것으로,
이후 단 한 차례의 수정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과 딸아. 너희가 세상에 처음 와준 날,
엄마와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 기뻐하였다.
그러나 부와 명예가 쌓여가는 동안,
형제 간의 우애가 금이 가고 서로를 의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아버지의 심장을 매일 조금씩 갉아먹는 일이었단다."
"이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재산을 분할하겠다.
장남 전00군에게는 시가 50억 원의 단독주택을,
차남 전00군에게는 시가 50억 원의 고급 아파트를,
사랑하는 딸 전숙에게는 시가 50억 원 상당의 오피스텔을 각각 상속한다."
"그리고, 현 그룹의 모든 경영권과 주식은 막내딸 전숙에게 위임한다."
낭독이 끝나는 순간, 정적을 가르며 둘째 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노인네가… 실성을 했구만!”
두 며느리의 외침도 뒤따랐다.
“아버님, 이게 세상 이치입니까? 도대체 왜요?”
그 소리들이 마치 청동 종처럼 식물인간이 된 내 귓속에서 울렸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지만,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있다.
그리고 들려왔다.
내 사랑스러운 막내딸, 전숙의 울음 섞인 목소리.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자, 딸이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손끝에 닿은 체온은 오래된 연극의 막을 내리는 손짓처럼 냉정했다.
“노인네,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편히 가세요.”
“당신 눈에 들기 위해 수녀복 입고 10년 넘게 살았어요.
그 연극, 이제 끝이에요.”
그녀의 입꼬리에 맺힌 미소는 나를 너무나 아프게 했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딸의 모습이 아닌,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야수의 모습이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숙아, 아버지는 그런 유언장을 쓴 적이 없다….'
나는 그 어떤 증오보다 깊은 절망 속에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러나 나의 외침은 살갗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내 영혼 안에만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날 밤, 둘째 아들이 다시 들어왔다.
전숙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고생했다, 우리 막내. 약속 잊으면 안 되지.”
“당연하지, 오빠. 그룹 팔면 반 땅이야.”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반짝이는 탐욕의 불꽃이 그들의 눈동자에서 일렁였다.
그날 밤, 도심 외곽의 한 고급 주점.
전숙과 둘째 아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뒤, 김 변호사가 들어섰다.
전숙 곁에 앉은 그는 그녀의 손을 잡더니 이마에 입을 맞췄다.
“수고했어, 김 변.”
둘째 아들이 술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약속대로 100억 줄게. 감사합니다, ”
그들의 연극은 완성되었다.
유언장은 조작되었고, 나는 그 조작의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주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기억은 흘러 1944년 통영. .
내 나이 열넷.
그 시절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내 피 안에서, 내 뼈 안에서.
그렇게 첫 회상의 문이, 지금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