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작은백합

#아름다운 마지막 기억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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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유리와 우리 집은 격의 없이 나름 가깝게 지냈다.

아무리 격이 없다 하여도, 주인과 머슴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아버지는 늘 만족하셨고, 어머니는 항상 마당의 정원을 가꾸시며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어르신 댁의 집안일도 도맡아 하셨다.



사유리는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어르신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니가 일본 분이셨고,

어르신 역시 일본 무사 가문의 출신으로 신식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내가 어르신의 딸, 사유리의 친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통영에서, 내 또래 중 이처럼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이는 드물었다.

아니 없다.


어머니는 늘 “중학교만 졸업하면, 너를 일본으로 유학 보내줄게.”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고, 아버지도 기꺼이 찬성하셨다.



그해 봄, 1945년의 일이었다.

나는 사유리에게 통영을 구경시켜 주기로 하고, 말을 타고 해저터널을 건넜다.



십여 년 전, 통영 바다 밑에 터널이 뚫렸고,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술이 동원된 일이었다.

일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유리가 말에 올라타고, 나는 고삐를 잡아 길을 안내했다.


집에서 해저터널까지는 불과 20~30분 거리,

말로는 단 5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우리는 자연스레 손을 잡고 걷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보는 눈이 많다.

사람들이 말을 탄 사유리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말을 타고 가는지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터널을 지나면 작은 숲길, 아니 산이 나온다.

우리는 그 근처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유리는 산 중턱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다.



말을 근처 가게에 묶어 놓고 함께 산에 올랐다.

사십 분 남짓,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숨을 몰아쉬며 걸었다.

내가 쉬었다 가자고 해도 “괜찮다”며 이내 다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중턱 즈음에 도착했다.

사유리에게는 통영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순간이었다.

우리는 싸온 도시락과 음료를 함께 나눴다.



남들이 보기엔 마치 소풍을 온 친구들 같았을 것이다.

사유리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그 다리는 백옥처럼 빛났고,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는 완벽했다. 열여섯의 나이에 이토록 성숙한 여인을 본 적이 없다.

정신이 혼미했다.




‘감히, 내가 아가씨를 넘보다니.’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머리를 세차게 쳤다.

그 순간, 사유리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녀의 따뜻한 품이 느껴졌다.

두 뺨을 감싸며 말했다.




“꼭 일본으로 유학 와. 대학을 마치면 신분이 몇 단계는 뛰어오를 수 있어.”



그녀의 말은 약속이었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고, 일본 유학을 다짐했다.

그녀는 다시 나를 꼭 안으며 말했다.




“네가 친구가 되어줘서, 정말 행복해.”



그녀의 온몸이 내게 밀착되었다.

나는 온몸이 떨리며, 알 수 없는 긴장과 전율이 차올랐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산을 내려오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사랑이었을까. 짝사랑이었을까.

산을 내려오니 오후 네 시 즈음이었다.



우리는 다시 말을 타고, 통영의 바닷가를 걸었다.

물론 고삐는 내가 잡았다.


해저터널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아버지께 들킨다면 벼락이 떨어질 일이었다.



아버지는 늘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어르신 댁에 도착해 사유리를 보내고,

나는 마굿간에서 말을 한 번 안아주었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르신 집에는 따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어머니가 자주 가시지는 않았다.




가정부가 점심 무렵 한 번 들르는 정도였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고, 우리 셋은 저녁을 함께했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는 전쟁 이야기를 꺼내셨다.




미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통영에서 아버지는 전쟁 소식통이었다.

일본에서 온 전보를 어르신께 직접 전해드리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고, 어머니도 표정이 밝지 않으셨다.



그때는 몰랐다.

전쟁이 우리 가족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 줄은.



봄이 지나고, 사방에서 전쟁 이야기가 들려왔다.


작년에 비해 몇 배는 많아진 소문과 불안.



지금까지는 늘 “황군이 승리하고 있다”는 말만 들었건만, 분위기가 달랐다.



그렇게, 1945년의 여름이 저물 무렵―


나는 지옥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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