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든 여자들
어제는 하루를 쉬고,
오늘 아침 드디어 전 직원 회의가 열렸다.
호텔 본부장, 은정, 화가, 승무원, 그리고 나.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유튜브 촬영팀 직원 두 명이다.
승무원은 계약금 2억, 연봉 1억,
그리고 법인카드까지… 모든 혜택이 똑같이 보장된,
그야말로 우리 호텔의 간판 같은 존재였다.
승무원은 신이 만든여자이다.
펜션 1층의 카페는 문을 닫고, 당분간 호텔 공사장 사무실로 쓰기로 했다.
우리 다섯 명이 모여 일하는 공간, 새 출발의 본거지였다.
7월부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것이다.
한 달 전에는 가오픈, 늦어도 10월 말에는 정식 오픈이다.
공정률은 이미 80%이상이다. 외관은 완성되었고, 내부만 남아 있었다.
사실, 공사는 돈만 주면 업자들이 알아서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홍보와 광고였다.
오후, 왈츠 프로의 남동생과 함께 3분 20초짜리 영상을 촬영하기로 했다.
펜션의 이름도 이제는 ‘제주상희호텔’.
점심 식사 후, 혜은이의 노래 *〈감수광〉*을 배경으로 왈츠 연습이 시작됐다.
드레스를 입은 순간, 낯선 내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댄스복.
하지만 음악이 흐르고, 포즈가 시작되자, 영혼이 춤을 타고 흘러나왔다.
‘제주라틴프로 최성민, 제주상희호텔 대표 최상희.’
화면 하단에 자막이 들어가고, 3분 동안의 황홀한 왈츠가 이어졌다.
연습실에 울려 퍼진 박수와 환호. 그날, 우리 모두는 무대 위 주인공이 되었다.
영상은 2시간 뒤 곧바로 업로드 되었고,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그날 저녁, 학원 사람들과 함께 웃고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을 때, 나는 이미 직감했다.
내일 아침, 세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예상은 맞았다.
다음날, 유튜브는 ‘대박’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이어 장마철의 비가 내리던 오후,
우리는 수영장에서 새로운 영상을 찍었다.
다양한 비키니와 군살 없는 몸매들, 그리고 프로 무용수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이다.
15분짜리 영상은 곧 업로드 되었고, 그 역시 대성공이었다.
세 번째 영상은 승무원 혼자서 촬영했다.
비 오는 날, 해변을 배경으로 한 단독 영상. 그녀의 타이틀은 단순했다.
“미스코리아 미(美).”
대학을 갓 졸업하고 도전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미’로 당선된 이력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빛나는 별이었다.
그 영상은 5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세 개의 영상은 모두 합쳐 천만 회를 넘겼다.
단숨에 채널은 폭발했고, 승무원은 단독으로 세 편의 영상을 더 찍었다.
아무리 봐도, 그녀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학원은 유튜브의 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마음이 허전했다.
산방산 근처 언덕 위 카페에 앉아 빗줄기를 바라보며,
쓸쓸함을 달래려 술을 떠올렸다.
외로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왈츠 프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하니?”
“수업 중입니다.”
“끝나고 뭐하니?”
“집에 가야죠.”
“나랑 술 한잔할래?”
“…네. 6시에 끝납니다.”
약속을 하고 차를 몰아 시내로 향했다.
우산을 쓰고 함께 걷는 길, 그의 팔이 내 어깨를 감쌌다.
낯설지만 따뜻한 기분.
참치와 양주, 그리고 어린 남자의 진지한 눈빛이.
노래방에서 한 시간, 웃고 떠들며, 마음은 이미 선을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스스로 걸어가지 않았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술기운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시간은 흐르고, 공사 현장은 점점 활기를 띠었다.
승무원 직원은 이제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고,
호텔카페 사무실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작은 본부가 되었다.
7월의 장마가 끝나가고, 휴가철이 다가왔다.
우리는 쉴 곳을 찾았고, 또 달려갈 준비를 했다.
8월, 공중파 방송에 한 달 40억을 투자할 계획.
호텔 공사비만 해도 1500억이 넘었다.
하지만, 광고와 홍보는 그 어떤 비용보다 더 큰 가치가 있었다.
그날 오후,
흰색 비키니를 입은 승무원과 검정 와이셔츠를 입은 프로 댄서가
함께 추는 3분짜리 룸바 영상이 올라갔다.
제주 최대 규모의 야외 수영장을 배경으로, 자막에는 이렇게 적혔다.
제주상희호텔. 제주라틴댄스프로. 전 항공승무원(미스코리아 미).
3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는지, 세상은 곧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서귀포로 향했다.
공사와 촬영으로 달려온 시간들, 이제는 잠시 쉼이 필요했다.
그러나 쉼조차, 언젠가 더 큰 도약을 위한 힘이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서귀포 둘레길을 걸으며, 문득 바다를 바라보았다.
깊고 넓은 바다 위에서 요트를 타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아직 사본 적 없는 요트. 하지만 언젠가, 그 위에 서 있을 나를 그려보았다
은정의 아버지는 바다에서 평생 그물을 던져 온 어부였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다는 은정의 뿌리였고,
그녀의 성품에도 바람처럼 자유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으니까.
본부장이 도착했다.
하얀 셔츠에 검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양산을 든 본부장이 내 앞을 걸어왔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빛을 담아내는 순간,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녀.
피부와 몸매는 타고난 듯했고,
함께 있으면 서로가 서른 초반으로 보일 만큼 잘 어울렸다.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자, 나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오… 은근히 가슴이 나보다 크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사장님도, 참… 부끄럽게.”
캔맥주를 기울이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8월 1일부터는 모든 직원, 본부장이 직접 뽑으세요.
광고 내고, 자금은 은정이가 지원할 겁니다. 전부 위임합니다.
다른 호텔보다 봉급은 1.5배. 그만큼 엘리트를 채용하세요.
그리고 절대 금품은 받지 마세요. 특혜도 없습니다. 오직 실력으로.”
나는 한 모금 더 마신 뒤 덧붙였다.
“사원은 되도록 제주 사람을 우선 채용하고요.
승무원, 은정, 화가는 프론트에 배치하세요.
아침, 점심, 저녁 세 타임을 돌아가며 로테이션으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9월 15일 전후로 가오픈, 한 달 뒤 정식 오픈을 하겠습니다.
제주 도민에게는 30% 행사로 초청하고,
먹는 것과 자는 것 모두 동일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우리는 바닷가 근처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부장은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 나이에 호텔 본부장까지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눈물이 있었을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외롭습니다.”
그 말이 내 가슴에 스며들었다.
나 또한 같은 처지. 외로움은 서로의 그림자를 닮아 있었다.
소주 두 병이 각자의 앞에서 비워졌을 때, 이미 밤 아홉 시.
본부장은 말했다.
“사장님, 제가 은정이한테 오라고 했어요.”
잠시 후, 은정과 승무원이 택시에서 내려 횟집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함께 근처 호프집으로 옮겨 생맥주 한 잔을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고,
8월 하순이 되자 눈앞에 호텔이 위용을 드러냈다.
공사 사장이 말했다.
“완성률 98%입니다.
시운전도 이미 돌입했으니, 일주일이면 영업 가능합니다.”
30층에는 제주 최고의 레스토랑이 들어섰고,
화려한 나이트클럽 라이브가수 콘서트 무대가 준비되었다.
아침 미팅을 마치고 호텔을 향했다.
눈앞에 선 완전한 건물,
그 웅장한 자태를 바라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0층 레스토랑에 올랐을 때,
창밖의 풍경은 말 그대로 축복이었다.
본부장이 보고했다.
“모든 직원은 9월 1일부터 출근합니다.
골프 연습장도 9월 1일 개장이고, 호텔 행사와 맞물려 30% 티켓을 발행합니다.
호텔프론트는 3명이 기본 근무고, 제가 당분간 아침 6시 출근을 하겠습니다.”
그녀는 나를 호텔 총괄 지배인에게 소개했다.
경력 30년, 본부장이 처음 호텔에 입문했을 때의 스승이라 했다.
“회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토랑에서 헤드 직원들과 차를 나누며 나는 입을 열었다.
“제가 28살 때, 미혼모로 일곱 살 아이와 반지하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죠.
그런 제가, 지금은 이 호텔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함께 최선을 다해서 같이 먹고 삽시다.”
순간, 레스토랑 안에 따뜻한 박수가 번졌다.
호텔만큼이나 단단한 믿음을 느꼈다.
30층 호텔의 가오픈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