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28살 그날의 빗소리

#살인미수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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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축제가 지나고 달력이 2월 하순을 가리켰다.


연말·연초의 북적임이 걷히자 호텔의 예약률은 여전히 만석이었다.

겨울이 물러가는 풍경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서운함을 느꼈다.


지난겨울, 보현사에서의 장작불과 고기 파티를 열 차례쯤은 했던 것 같다.

열 번 모두 나는 그 보현사에서 자고왔다.


경호원 부부도 나와 함께 그 밤들을 보냈고,

다른 직원들은 파티가 끝나면 다음 날 출근을 위해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경호원 부인은 보현사에서 나와 함께 자는 것을 ‘근무’의 일부라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어느 날, 경호원이 말했다.
“회장님, 저번부터 미행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요?”

“5일 전부터입니다.

동선을 파악하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 보현사엔 가지 않는 편이 안전하겠습니다.”



한옥집에 나와 아내,

그리고 은정과 승무원을 함께 지내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나는 말했다. “오늘부터 그렇게 해라.”

“네, 회장님” 하고 답했다.



부인은 호텔과 유튜브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부인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고, 승무원, 화가, 본부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한국무용 전공이라는 사실이 무대 밖에서도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경호원 집은 바로 근처였고,

당시 스카우트비로 억대의 액수를 건네 평생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한옥집 근처에 부모님 집과 함께 집 두 채를 샀다.



3월 1일, 우리는 보현사에 모였다.

용역으로 남자들이 불을 지폈고, 건물은 순식간에 소각되었다.


모두가 막걸리 한 잔씩 들고 보현사를 위해 건배했다.

포크레인이 재를 트럭에 실어 나르는 동안,

몇일전의 생기 있는 목조 건물은 흔적도 없이 붉고 황토빛 땅만 남았다.

그 땅은 팔아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되었다.일종의 시주였다.



보현스님과의 만남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다.


처음 만난 지 이틀을 함께 보낸 밤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나는 허망함에 사로잡혔다.


경호원 아버지는 한옥의 정원과 집 관리를 맡았고,

어머니는 식사와 가사 도우미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두 분 모두 호텔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사람이 많은 것이 곧 안전이라는 계산이었다.


경호원은 미행한 사람들의 뒷조사를 의뢰해 계속 추적했다.

은정은 내경호원으로 추가 배치되었다.


몇 일 뒤,

출근길에 은정이 차 문을 열어주고 경호원 기사가 운전해 교차로를 통과하던 그 순간,

옆에서 트럭이 들이받았다.


차는 전복되었고 트럭은 전신주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의 얼굴을 보자 나는 너무나 놀라 기절했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깨어난 시간은 사고 후 5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경호원은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많이 다쳤나요?” 하고 묻자,


“전복되면서 뼈가 살짝 금이 갔습니다. 일주일이면 괜찮습니다.” 라고 했다


.범인은 은정의 추적으로 체포되었고,

은정은 갈비뼈 두 개가 부러져 옆 병실에 누워 있었다.

범인은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



시간은 오후 3시이다. 은정의 병실에 들어다가 경찰서로 향했다.

“내가 운전할게.” 하고 스스로 말했지만, 이미 내 차는 폐차된 상태였다.


주차장에 나오니 봉고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서 앞에 도착해 담배 한 개비를 피우도 들어갔다.


그 남자는 내게 아는 사람 같았다—

20살 때 나를 임신시킨 그 남자는, 딸의 아버지였다.

서울에서 식당을 할 때 세 번 찾아왔고,

결국 세 번째 방문 뒤에 접근금지 가처분까지 신청한 사람이었다.



서장과의 인사는 짧았고, 형사과로 안내되었다.

취조실안에는 수갑을 찬 전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나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왜 그랬니?

네가 한 거니?

누가 시켰니?” 나는 물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서장이 말문을 열었다.

“과실치상이 아니라 살인미수로 수사 중입니다.

10일 전에 전 남편 어머니 통장으로 3억 원이 입금된 기록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숨이 막혔다.

“선금이냐?” 전 남편의 눈에서는 후회의 문물이 흘렀다.

그는 울먹이며 “미안하다” 고 말했다.


서장은 진술을 떠보며 계속 압박했다.

“돈이 필요하면 더 주겠다. 시킨 사람만 말해라. 무혐의로 풀어주겠다.”

그제야 전 남편은 입을 열었다.



한 달 전, 어떤 남자가 집으로 찾아와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3억을 줄 테니 차로 너를 살짝 다치게만 해달라.”


그들은 호텔에서 며칠간 머물며 내 동선을 파악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이름은 모른다, 다만 통화에서는 카지노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어제 그 남자가 오늘을 ‘D-day’라고 지시해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 “진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살짝 다치게만 하라 했다.” 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살짝이 몇 주냐?” 그는 “8 주”라고 했다.



서장은 내게 말했다.


지금 여기 있으면 더 위험합니다.

석방시켜줄 테니 서울로 가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세요.”


그리고는 가방에 여비를 건넸다.

경호원에게는 비행기로 떠난 것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그 이후 전 남편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경찰서 밖,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따스한 봄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왔다.


누군가가 나를 겁주거나, 죽일 생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죽음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이는 두 호텔 중 하나일 터였다.


하나는 대그룹 호텔이라 가능성이 낮아 보였고,

다른 하나는 카지노 호텔로 위험성이 짙어 보였다.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고 경호원이 도착했다.

“서울 가는 비행기 탑승 확인했습니다.” “응, 그래, 잘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원 벤치에서 경호원과 경호업체 직원 네 명과 면담이 시작되었다.

계약금은 한 사람당 1억, 연봉 1억을 제시했다.

“이제부터 제주상희호텔, 최상희 회장의 경호원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나는 그들과 악수를 나눴다.

경호원기사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경호팀장이 되었다. 총6명이다.


내 신변 경호는 전직 형사 출신 여섯 명이 담당하게 된것이다.


그날 저녁, 본부장이 단서를 들고 왔다.



나는 담배 연기 속에 서늘한 결의를 느꼈다.

돈이 사람을 얼마나 무섭게 만드는지, 오늘에 와서야 새삼 절감했다.


사람의 돈 앞에서 생명이 얼마만큼 쉽게 저울에 올려질 수 있는지,

나는 이제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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