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28살 그날의 빗소리

#완성되어지는 그림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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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인터넷으로 진행된 제주도민 30% 할인 행사는 단 하루 만에 마감되었다.




아침 9시에 오픈했는데,

오후 2시가 되기 전에 이미 끝나버린 것이다.



나는 숙소도 옮겼다.

호텔 근처의 전통 한옥을 개조한 집이었는데,

차로 10분 거리의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옥은 꽤 컸고, 마당과 담장도 정성스레 꾸며져 있었다.


호텔 2층에는 내 사무실과 호텔 사무실을 마련했다.



한옥에서는 은정, 승무원,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은정의 추천으로 경찰 특공대 출신의 남자를 경호원으로 스카우트했다.



호텔 사업은 생각보다 무섭고,

카지노 사업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흔 살, 무술 합이 7단인 도민 출신으로,

원래는 시내에 살았지만 내가 합의해 호텔 근처로 이사시켰다.



날씨 좋은 날이면 나는 한옥에서 호텔까지 걸어갔다.
직원들은 일찍 출근했지만 나는 9시에 맞춰 천천히 출근했다.




걸음이 운동이자 나름의 여유였다.

가오픈하던 날, 찾아온 사람은 부모님, 미진, 가은뿐이었다.



3일 동안 머물며 매일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10월 8일, 드디어 정식 오픈이다.
10월 10일 기준으로 이미 10월 말까지 예약이 꽉 찼다.
이렇게 빨리 마감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총 공사비는 직원 스카우트 비용까지 포함해 1,654억 원이 들었다.

오픈 이후, 나는 호텔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모든 권한은 본부장에게 위임했고, 장부도 관리하지 않았다.
내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출근 후 사우나에 들러 수영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엔 왈츠를 추러 가는 것이다.

12월, 제주도에 눈이 내렸다.
경호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제주시내 백화점에 들렀다.
고생한 직원들에게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순금 10돈 팔찌를, 경호원은 부인 줄 팔찌를 구입했다.

직원들은 호텔에서 숙박하는 날이 많았다.



특히 금·토·일은 바쁘게 돌아갔다.
유튜브 스타들이 많아 여자 직원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다.
특히 승무원이 단연 인기 1위였다.



나는 종종 혼자 시간을 보냈다.



삶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눈 내리던 어느 날, 보현사에 들렀다.
평일이라 아무도 없었고, 대문은 비밀번호로 잠겨 있었다.
경호원이 들어가 보일러를 켜고 마당의 눈을 치운 뒤, 우리는 녹차를 나눠 마셨다.



눈 오는 날, 낯선 남자와 둘이 차를 마시는 순간이 묘하게 좋았다.



나는 경호원에게 아내가 무슨 일을 하냐 물었고,

그는 아이들을 돌보며 집에 있다고 답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
나는 그에게 말했다.


“같이 저녁 먹자고, 아내분 오시라고 하세요.”
“네, 회장님.”

우리는 저녁을 준비했다.



경호원이 마트에서 소고기와 회 등을 사왔고, 나는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
좋아하는 시바스리갈도 준비했다.


저녁 6시, 그의 아내가 도착했다.
나는 직접 맞으며 말했다.



“어서 와요.”

밖은 눈이 점점 거세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옆집 부모님이 돌보고 있어 걱정이 없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남매였다.



코트를 벗은 그의 아내는 눈에 띄게 날씬했다.
한국무용을 전공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결혼했다고 했다.


36세, 몸무게는 50kg도 채 안 되어 보였다.

나는 곧바로 답을 얻었다.



호텔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프론트 얼굴마담’이었다. 내 눈은 정확했다.

“호텔에서 일해볼 생각 있어요?”



“저 같은 아줌마를 누가 써주나요.

무용도 나이가 많다고 학원에서 안 받아줘요.

채용만 해주신다면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가 직접 면접 본 거예요.

내일부터 출근해요. 필요한 서류는 총무과에 말하세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날 밤, 나는 혼자 자기 무서워서 같이 자자고 말했다.



이야기는 길어졌고, 시계는 어느덧 9시를 넘겼다.


나는 경호원에게 날 밝으면 아내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혼자 시바스리갈을 더 마시다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보현사가 불타고 있었고, 보현 스님은 웃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스님! 스님!” 내가 불렀지만, 스님은 대문을 나가 눈 내리는 들판으로 걸어갔다.



눈을 뜨니 새벽 6시.

차 시동 소리가 들렸다.



경호원 부부가 떠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장작불 가까이서 담배를 피웠다.
‘왜 스님은 웃고 있었을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누룽지와 김치로 아침을 먹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맑아졌다.



대문을 나서자 눈 덮인 밭에 토끼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몇 장을 담았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토끼가 부러울 뿐이었다.


잠시 후, 경호원 부부가 다시 돌아왔다.
그의 아내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나타났고, 내가 선물한 팔찌를 차고 있었다.



“회장님, 팔찌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나는 내가 차던 순금 20돈 팔찌를 꺼내주었다.



그녀는 거절했지만 억지로 쥐여주었다.

“내 일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해줘요. 적응할 때까진 3달 동안 야간 근무는 빼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날 보현사를 단속하고 문을 잠근 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불타는 보현사를 상상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본부장과 승무원이 반겨주었다.
근무복이 나올 때까지는 내 옷을 입고, 프론트는 본부장이 가르쳐주기로 했다.



“3달 동안은 야간 뺍니다. 적응하면 순번 돌려요.”
“네, 회장님.”



사무실 창밖에는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12월 한 달 내내 눈이 많이 왔다.



호텔 회전율은 무려 85%. 성공이었다.
2월부터는 100% 가동이 가능할 것이다.



날이 추워져 왈츠는 자주 가지 않았다.



눈길은 미끄럽고 위험했다.


호텔 헬스클럽에서 런닝머신 한 시간 뛰는 게 운동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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