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개망초꽃 농사

아무데서나 공터만 있으면 잘 자라는 개망초꽃을 쉬운 농사에 비유하여 쓰다

by 박재옥

폐허에서는 개망초꽃 농사가 제격이다

양생*을 쫓아 남원 만복사지 찾아갔더니

사랑을 잃은 공터에는 개망초꽃뿐이더라


한탄의 재 뿌려진 땅에 무엇을 심겠는가

땅주인은 농사지을 의욕 잃었는데

무욕과 자포자기의 터에 무엇을


폐허를 뒤덮은 개망초꽃 무리 보라

방심한 배후를 기습하듯

소리소문 없이 날아든 바람의 씨앗들

밤사이 흰 소금밭처럼 꽃 피웠나니

뜨거운 햇살만으로도 제법 실한 농사짓는다

아무 신경 쓸 일 없다


잊고 나서도 잊지 못할 사랑 있거든

한여름, 상심한 마음의 공터에 가보라

희고 자욱하게 꽃 피운 촛대들이

상처 받은 마음 위로해줄 터이니


농사 못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득 되는 일 없다



* 양생(梁生) : 김시습의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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