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데서나 공터만 있으면 잘 자라는 개망초꽃을 쉬운 농사에 비유하여 쓰다
폐허에서는 개망초꽃 농사가 제격이다
양생*을 쫓아 남원 만복사지 찾아갔더니
사랑을 잃은 공터에는 개망초꽃뿐이더라
한탄의 재 뿌려진 땅에 무엇을 심겠는가
땅주인은 농사지을 의욕 잃었는데
무욕과 자포자기의 터에 무엇을
폐허를 뒤덮은 개망초꽃 무리 보라
방심한 배후를 기습하듯
소리소문 없이 날아든 바람의 씨앗들
밤사이 흰 소금밭처럼 꽃 피웠나니
뜨거운 햇살만으로도 제법 실한 농사짓는다
아무 신경 쓸 일 없다
잊고 나서도 잊지 못할 사랑 있거든
한여름, 상심한 마음의 공터에 가보라
희고 자욱하게 꽃 피운 촛대들이
상처 받은 마음 위로해줄 터이니
농사 못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득 되는 일 없다
* 양생(梁生) : 김시습의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