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 방죽에는 지체 높은 대군이 한 그루 살고 있다
기름기 없는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곡기 끊고 단식 중인 선비처럼 아집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가늘게 뻗은 잔가지마다 자존의 허공을 찌르고 있어
깡마른 몸 어디에서도 피 한 방울 튀지 않을 것만 같다
대군의 안부가 늘 궁금했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대군은 금시초문의 내상을 입고
선연한 분홍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철마다 방문하던 날개 큰 새들과
수초 속에 웅크리고 있던 물고기들은
대군을 추종하던 작당(作黨)이었다
대군의 밀서를 돌리던 선비가 붙잡히던 날
시래기 다발처럼 엮여서 끌려갔던 산송장들이
유혼(遊魂)으로 떠돌다가 이 방죽에 모여든 것이다
그들의 죄명은 무릉도원을 연모한 죄
감히 무릉도원을 발설한 죄
대군이 온몸으로 흘리던 피는 그들이 꾸었던 꿈
단 열흘을 넘길 수 없었던 눈부신 분홍빛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