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관음죽 사진첩

by 박재옥


우리집 거실에 놓여 있는 관음죽 사진첩을 펼쳐보네

푸른 이파리가 번쩍이는 자리마다

지나간 시간의 사진들을 우수수 쏟아놓네

어린 관음죽이 처음 들어오던 날이

돌 지난 푸른비가 마법의 첫 걸음을 막 떼던 무렵이었고,

사랑이 언니는 교회 크리스마스 발표회에서

붉은 잇몸의 첫인사를 했었네


낱장마다 간직하고 있는 희로애락의 순간들

에버랜드로 유치원 소풍가는 언니를 따라갔다가

푸른비가 혼절했던 아찔한 기억

축 늘어졌던 어린 몸이 다시 깨어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관음죽의 푸른 기운이 가 닿은 덕분이었네

메마른 화분도 물을 주면 다시 푸른 눈을 뜨던 것처럼


부쩍 자란 관음죽 겉껍질을 벗겨내면서

죽(竹)의 의미를 알게 되었네

껍질 벗고 나온 희고 여린 줄기들을

시간이 만지작거리자 점점 강인한

청죽의 몸통으로 마디게 굵어져간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의 여린 몸통도 더불어 굵어져갔네

곁에서 성장을 지켜보는 건 마디마디가 축복이었네


관음죽 줄기들이 번식하며 울창해지자

작은 화분이 구운 오븐의 식빵처럼 부풀어 올랐네

두 번째 분갈이를 할 무렵

학교에서 귀가한 푸른비는 노란 책가방을 던져 놓고서

포켓몬스터와 스펀지 밥에 빠져 살았고,

치아 교정을 하고 있던 사랑이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서 성숙의 교문으로 등교했네


우리집 거실의 관음죽과 같이 지내온 시간이

무성해진 이파리를 타고서 녹포(綠袍)처럼 흘러내리네

윤기 나는 푸른빛 우산들이 반들반들 일가(一家)를 덮네


생기발랄한 셔터를 누르며 속정 깊은 사진을 여럿 찍어준

푸른 사진사가 준비하는

미래의 사진첩을 기대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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