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바람의 적소(謫所)

by 박재옥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면서 보니

세상의 모든 유폐는 적막으로 통하는 길의 입구다

강을 건너는 것은 스스로를 가두는 일

갇힌 자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더 외로워지기 위하여 유폐의 길 위에 선다

사방이 강과 산으로 닫힌 이 고립의 섬에서는

치부를 드러낸 채 괴로워하는 먹구름처럼

체념한 어린 왕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치욕보다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읽고 또 읽어 보지만

목소리가 복숭아씨처럼 단단하게 여무는

장성한 그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불면의 밤을 흰 별로 태우고 나서

이 고립의 처소를 마음껏 벗겨낼 수만 있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사약인들 대수롭겠는가

여기서는 바람도 강을 건너지 못하고,

산을 넘지 못하는

바람의 적소(謫所)였던 것


배를 타고 다시 강을 건너오면서 알았다

세상의 가장 적막한 적소는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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