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피

by 박재옥


새봄 맞은 아파트 베란다가 수군거린다

잡초의 안개 자욱한데

방치된 화분 틈에서 물봉선이 꽃 몸살을 앓는 중이다

우후죽순으로 터지는 자줏빛 꽃망울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의 합격소식처럼 감개무량하다

꽃 사이사이 터 잡은 잡초를 솎아내다가 그만 손이 멈춘다

평소 분필 잡던 손길이 거기 가 닿는 사이,

햇살의 가르침대가 손등을 탁탁 치고 가는 사이,

무단결석 중인 정국이 생각이 탁 치고 지나간다

학적계 선생님이 더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묻기에

정국이 어머니 만나러 가 보았지만

들고 갔던 서류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선생님, 그 애는 피가 아닙니다

정국이 어머니 말씀을 듣는 순간,

죽비가 튀어나와 내 등짝을 후려치고 갔다

어린 숨을 거두려던 손길이 바르르 떤다

저마다 그늘 지니고 사는 우리도 한때는 저 피였던 것을

뿌리 뽑혀나가지 않았던 행운이 있었을 뿐

숨 한번 참으면 한 목숨도 건질 수 있는 찰라인데,

불편하다고 흔적을 지우려 하는가

새들에게는 밥이 되는 것들

하늘을 나는 날개를 살찌우기도 하는 것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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